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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진 신고는 골프의 자랑

“자진 신고는 골프의 자랑”


여러 스포츠 가운데 심판이 따로 없는 경기는 골프뿐이다. 골프는 선수가 직접 스코어를 기록한다.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골프만큼 속이기 쉬운 기회가 많은 게임도 없다는 말이 되며, 스코어를 속이든 말든 본인의 양심에 맡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표적인 신사의 스포츠로도 불리는 반면, 골프만큼 기만행위를 한사람이 호되게 경멸을 받는 게임을 찾기도 어려울 것이다.
천만 달러의 소녀 미셸 위가 프로 선수로 첫 출전한 LPGA 삼성월드챔피언십에서 최종합계 8언더파 280타, 4위의 성적으로 데뷔전을 화려하게 마쳤으나 불과 2시간 만에 실격을 통고 받는 최악의 신고식을 치렀다. 규칙위반 벌타를 스스로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골프 규칙을 위반한 적이 있는 주말 골퍼들로서는 속으로 뜨끔(?) 하면서 새삼 골프 규칙의 엄격함을 되새기는 기회가 됐을 수도 있다.

당시 상황을 보면 미셸 위는 볼이 덤불 사이에 끼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동반자인 박지은에게 언플레이어블(unplayable)을 선언했다. 여기까지는 문제될게 전혀 없다. 하지만 드롭을 할 때는 홀과 가깝지 않은 방향을 선택해야 하는데 비디오 판독 결과 30~38cm 가량 홀과 가까운 쪽으로 볼을 떨어뜨렸다. 소위 오소플레이가 된 것이다.

골프 규칙 20조 7항에 따르면 오소 플레이(playing from wrong place)란 ‘오소(誤所)’라는 말 그대로 “규칙에서 스트로크 하거나, 볼을 드롭하거나, 플레이스 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코스의 일부 지점에서 혹은 규칙에 의하여 드롭한 볼을 재드롭 하거나 움직인 볼을 리플레이스 해야 할 때 자신의 인플레이 볼을 스트로크 하는 것을 가리킨다.”
오소 플레이를 저지른 선수에게는 그 벌타가 주어지며, 스코어카드를 제출하기 전 위원회에 그 사실을 보고하지 않을 경우에는 실격 처리된다.
오소플레이에 대한 제보가 들어오면 경기 위원이 선수 본인과 캐디, 스코어 기록원과 함께 현장 검증을 실시하며 비디오 녹화 테이프 또한 증거 자료로 활용된다.

오소플레이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언플레이어블을 선언한 뒤 1벌타를 받고 세 가지 처리중 하나를 택할 수 있다.
① 원구를 친 곳에서 되도록 가까운 곳에서 친다.
② 볼이 있던 지점과 홀을 연결하는 후방(뒤로 얼마든지 갈수 있음) 선상에 볼을 드롭한다.
③볼이 있던 곳에서 두 클럽길이 내의 곳에서 홀에 가깝지 않은 지점에 볼을 드롭한다.
미셸 위의 경우 ③의 위반에 해당된다.

자동차의 속도위반은 경찰이나 감시 카메라에 적발되어야 비로소 위반으로 성립된다. 제한속도 60km의 국도에서 80km를 달렸거나, 그 이상의 엄청난 스피드로 달려 과속하더라도 적발되지 않으면 그것은 속도위반이 아니고 범칙금도 부과 되지 않는다.
이럴 경우 “나는 제한속도를 위반했으니 범칙금을 물겠다.”하며 적발되지도 않았는데 자진신고 하는 운전자는 없을 것이다.

이처럼 자동차의 속도위반 이외에도 일상생활에서 크건 작건 이와 비슷한 위반은 누구나 하고 살지만 단지 시치미를 뗄 뿐이다. 그렇지만 골프에서는 그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철저한 자진 신고 위에서만 골프는 성립되기 때문이다.
골프의 명언 중에 “골프 규칙은 고의로 부정을 범하려는 사람이 없는 것을 전제로 하여 제정 되었다.”라는 말이 이것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골프 규칙에는 4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볼은 있는 상태 그대로 플레이 할 것. 둘째, 1개의 볼로 플레이 할 것. 셋째, 스트로크는 연속성을 지닐 것. 넷째, 반드시 홀 아웃 할 것. 이 원칙만 지키면 규칙에 저촉되는 일도 없고 자진 신고하는 일도 없게 된다.
그러나 골프를 하다보면 이 원칙을 제대로 지킬 수 없는 사태에 직면할 때도 있다. 로스트볼, OB, 언프레이어블, 워터 해저드 등 스트로크를 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상태가 그것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골프의 원칙을 지키려다가는 플레이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이래서 규칙에 의한 구제 조치가 마련된 것이다. 대신 구제를 받으려면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덤불사이에 들어간 볼을 1벌타를 받고 구제 받는다는 것은 규칙의 온정이다. 즉 페널티는 벌이 아니고 구제이다.

어느 벌이라도 감수하고 자진 신고하는 일, 그것은 골프만이 가지는 자랑이요 큰 매력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골프를 즐기고 사랑하는 바로 그 이유인 것이다.
까다롭고 복잡한 규칙이라 다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 규칙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적으로 돌리는 사람도 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는 자명할 것,

주말골퍼 들이여! 애매하거든 자신에게 불리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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