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훈 한진그룹 회장“김종필 때문에 佛 재고 비행기 6대 사”

입력 : 2005-09-14이호 기자


2002년 11월 정석(靜石)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이 타계했을 때 각계 원로들은 ‘수송 외길’을 걸어온 거목이 떠난 것을 애도했다. 조 회장은 한국의 민간 항공사를 새로 쓴 인물이다. 1990년 7월 12일 조 회장을 인터뷰했다. 후발주자인 아시아나항공이 첫 취항을 마치고 1년여가 지난 다음이라 ‘민감한 문제’가 많을 때였다. 그는 가끔 불편한 심기를 삭이기도 했지만 톤을 낮추면서도 원칙을 강조했다. 이때마다 그의 눈빛이 차갑게 느껴졌다.

“그렇게 급하게 하지 말고 순리대로, 라이선스 있는 대로, 시간을 가지고 해도 늦지 않다고…. 몇 번이나 그 사람들(아시아나항공)한테 충고했어요. 항공사업이라는 것이 절대 쉬운 게 아닙니다. 비행기 값만 70억 달러 넘는 돈을 투자해 지금까지 왔는데도 부족한 것이 이 항공사업입니다. 70억 달러면 포항제철을 23개나 건설할 수 있는 돈입니다. 이런 막대한 투자를 감안해 자금 사정도 규모 있게 생각하면서 절대 서두르지 말라고 여러 번 얘기했어요.”

조 회장은 아시아나항공의 취항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요는 너무 서두른다는 것이었다. 정부 정책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기술적인 면이라든지 항공기 확보, 인원 문제, 정비시설, 훈련 등 준비가 된 연후라면 모르겠어”라는 말을 쏟아냈다.

“그런 것들이 전혀 준비되지도 않았는데 5공화국 말기에 후다닥 내줬잖아요! 그러니 피해를 누가 보고 있습니까? 그런데 정부는 허가만 내주고 모른 척하고. 교통부가 민항기 조종사 한 사람이라도 길러봤소? 뭘 알고서 일을 해야지!”

쌓였던 울분을 털어내려는 것일까. 한 번 질문하면 그는 10분 넘게 ‘항변’했다. 특히 그는 조종사 문제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항공기가 준비되니까 취항했을 것 아니냐? 그것만 있으면 항공사업이 됩니까? 사람이 중요해요. 그런데 몇 년씩 훈련시켜 놓은 조종사들을 유혹해 우리를 골탕 먹이고.”

조 회장은 흥분한 듯 보였다. 그는 얼마 전 한 중역에게 역정을 내기도 했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국제선 청사에 아시아나 간판을 내걸지 못한다고 그랬는데. 저놈의 인간들이 어떤 수작을 했는지 모르지만 간판이 내걸렸어! 당신들은 뭐했어!”

그에게 이 말은 꺼내지도 못하고 얼른 화제를 바꾸었다. 원로는 자신의 역사 앞에서는 기운이 솟는 법이다. ‘조중훈의 역사’는 수송의 역사였고 민항사의 기록이기도 했다. 어떤 질문을 해도 대한항공의 역사가 나올 것 같았다. 마침 조 회장이 프랑스 정부가 주는 ‘레지옹 도뇌르-그랑 오피시에’ 훈장을 받았다. 그래서 프랑스와의 인연부터 물었다. 그는 ‘한·프랑스 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이기도 하다.

“그때가 양택식 서울시장인가 그랬는데. 서울의 지하철 시대를 열 때 프랑스에서 들여오기로 하고 전부 섭외를 마친 상태였어요. 그런데 정치적인 이유인지, 누군가 로비를 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일본 업체로 바뀐 겁니다. 난리가 났습니다. 프랑스에서는 한국과 단교하겠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말이지요. 그런 와중에 한국이 외교 무대에서 일이 터진 겁니다. 마침 북한이 세계보건기구(WHO)에 가입하겠다고 나서니까 박정희 대통령이 ‘막아!’ 이랬단 말이죠. 문제는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곳에서 터졌어요. 프랑스가 반기를 들고 나온 거예요.”

반기를 들다니요?

“유엔에서 북한 편을 들겠다는 얘기지요. 이건 상상도 못한 거지. 지하철 때문에 정부가 꼼짝없이 당하게 된 거지요. 그런데 프랑스는 ‘1표’가 아닙니다. 그 당시 프랑스 식민지 표가 전부 17표예요. 프랑스가 지금도 그 표는 유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런 걸 배워야 합니다. 외교력을 배우라는 겁니다. 프랑스가 자기 식민지를 독립시켜줬지만 그 식민지들은 프랑스에 의존하지 않고는 유지가 안 돼요. 세네갈 같은 나라는 프랑스가 1년에 몇십 억달러를 원조해줍니다. 그럴 수 있는 나라가 17개국이나 되는 겁니다.”

하루는 김종필 총리가 조 회장을 찾았다. 김 총리의 첫 인사는 “빨리 프랑스로 날아가라”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그 양반이 당시 조르주 퐁피두 대통령을 만나 에어버스(항공기) 6대를 사는 것으로 합의한 겁니다. 어떡합니까. 제작만 해놓고 팔리지 않던 에어버스 6대를 구입했죠.”

그 후 조 회장은 프랑스 정부가 경제 협력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아들여 20여 년 동안 한·프랑스 경제협력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지금은 그의 장남인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이 위원장을 맡고 있다.

벤츠 탄 한국 기업인 1호

조금 다른 얘기지만 ‘프랑스통’이 된 조 회장은 88올림픽 유치도 확신했다. 프랑스의 외교력을 믿었기 때문이다. “올림픽 유치도 프랑스 표가 없었으면 안 됐습니다. 독일 바덴바덴에서는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고생을 했지만 나는 프랑스를 설득하느라 애를 썼어요. 근데 프랑스에서 나한테 사인을 보내오는 거예요. ‘됐다!’ 하고선 발표도 나기 전에. 그래서 서울 본사에 연락해 특별기를 보내라고 했어요.”

그 후에도 민간 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했지요.

“민간 외교는 은밀하게 하는 건데 그런 게 알려지면 특히 국제적인 항공사를 운영하는 사람한테는 부담이 될 때가 많지요. 저 사람은 목걸이(신분증) 없는 외교관이니 조심하라고 경계할 때가 많고 말이지요, 하하.”

우리나라 기업인으로는 처음으로 벤츠를 타신 분이라고 하던데요.

내가 10년 가깝게 미군 수송을 했거든요. 사업을 시작한 것이 1957년인데, 그때 벤츠를 탔어요. 당시만 해도 미군 장교들이 한국을 생각할 때 남자는 전부 ‘도둑놈’이고, 여자는 ‘양부인’이고, 집은 ‘하꼬방’이고, 길은 전부 먼지투성이였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사업가들은 ‘짚차(지프)’면 최고였어요. 사장이라는 사람도 짚차를 타면 아주 우쭐하고 말이지. 그러나 그건 순전히 한국적인 사고방식이었어요. 미군들하고 얘기해 보니까 짚차 타고 온 사람, 저건 분명히 도둑질한 차를 타고 온다 그거예요. 미군 차를 훔쳐 개조했다는 거지요.”

그래서 벤츠를 산 겁니까.

“나는 이날까지 남이 하는 것은 한 번도 안 했어요. 전부 개척만 해왔습니다. 차도 짚차는 안 되겠다 해서 없는 무리를 해가지고 벤츠를 샀어요. 그런데 이게 저를 확 바꿔놓은 겁니다. 벤츠 타고 미군들을 만나니까 저를 완전히 달리 보는 거예요. 게이트를 통과할 때도 일일이 패스포트를 보여주지 않아도 되고 귀빈 대우를 받으면서 사업을 한 겁니다. 8군 장교니 뭐니 자기네들이 벤츠를 타봤습니까? 오히려 내가 백만장자 대접을 받는 겁니다, 하하.”

오늘날의 대한항공도 뿌리는 베트남에서 수송으로 급성장한 한진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래서 조 회장은 대한항공이 아무리 성장하고 규모가 커져도 ‘한진그룹’을 고집했다. 물론 동생인 조중건 사장(현 대항항공 고문)의 공도 컸다. 친화력과 사업적인 직관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형은 역시 ‘노는 물’이 달랐다. 외교적으로, 또는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큰 덩어리는 조 회장 몫이었다. 1964년의 일이다.

“장기영씨가 부총리를 지낼 때입니다. 그는 잊을 수 없는 사람인데, 장 부총리 같은 분이 계셨기 때문에 오늘 경제가 이만큼 성장한 것이지요. 64년에 그 양반이 부총리가 됐는데, 그때 대한민국에 가용 외화가 4700만 달러밖에 없었어요. 그 숫자를 내가 잊어버리지도 않습니다. 국가 재건을 하겠다고 국민 앞에 약속했는데. 쓸 수 있는 외화라곤 4700만 달러밖에 없고, 그것도 씨티은행에 조건부로 들어가 있는 돈이에요. 그런데 1964년 7월께인가? 장기영씨가 어떻게 알았는지 내가 다나카 대신 하고 친하다는 것을 알고 나를 부르더니 일본에 가서 2000만 달러만 빌려오라는 겁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오네가이시마스(부탁합니다) 할 수는 없지 않으냐’고 했어요. 생각 끝에 묘안을 짜냈어요. ‘이승만 라인’이라고 있잖아요? 어선들이 못 들어오게끔 이 대통령이 고집스럽게 그어 놓은 바다 경계수역, 그걸 얘기했어요. ‘이 라인에 들어온 일본 어선을 한 서너 척만 잡아버리세요’라고 했지요.”

“日 어선 잡으면 2천만달러 빌려오겠다”

돈 빌리러 가는 처지에 그런 무모한 일을 벌인다고요?

“장 부총리도 처음엔 ‘그걸 잡으면 교섭을 어떻게 해요’라고 하더군요. 그러나 부탁하려면 일본이 들먹거리게 만들어 놓고 가야지 덮어놓고 가서 되겠습니까. 그랬더니 장 부총리가 당장 잡아들이겠다는 겁니다. 진짜 다음날 되니까 일본이 난리예요. 어선 세 척이 나포됐다 이거지요. 이때 내가 일본으로 건너갔지요.”

다나카를 만나서 뭐라고 했습니까.

“선물을 주겠다고 했지요. 자기 정치력으로 나포 사태를 해결했다고 하면 대단한 게 될 테니까 환영할 수밖에요. 빨리 한국 정부에 선을 대라면서 좋아하는 겁니다. 어려운 척하면서 부총리에게 전화했지요. 그것도 다나카 대신이 옆에서 들으라고 일본말로 말이죠, 하하하. 그렇게 해서 문제를 풀었지요. 그런데 장 부총리 말이 이자가 비싸다고 깎아오라고 하잖아, 하하하. 그때가 우리 아버님이 고희(古稀)셨거든요? 그래도 빨리 가라는 거야. 그 대신 자기가 부총리로서 아버님께 가서 절을 하겠다 이거예요.”

이런 일이 있었으니 65년 베트남 파병 때 장 부총리가 조 회장을 돕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 대한항공을 인수하게 된 배경을 물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찾은 것이 68년 초일 겁니다. 물론 박 대통령께서 찾는다고 할 땐 예상했지요. 그 전에 이미 여러 채널을 통해 얘기가 왔었으니까요. 그런데 솔직히 정부 쪽에서 타진이 왔을 때는 조 사장(조중건)도 강력히 반대했고…. 그런데 대통령께서 고민을 많이 한 것 같고 맡으라고 하시는데 뭐라고 그래요.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했지요.”

한진은 항공사를 경영해본 경험이 있지 않았습니까?

“5·16 이전에 ‘에어 코리아(Air Korea)’를 세워 쌍발 여객기 컨베이-240을 들여다가 서울~부산을 1년 남짓 운항했습니다. 그러다 61년에 5·16이 나자 항공 면허를 반납하게 됐지요.”

반납한 게 아니라 빼앗긴 것 아닙니까.

“그때 정부에서 항공사업을 하니까 민간인이 하는 것은 좀 삼가해서 자진 반납했죠.”

대한항공을 인수하기 전에 청와대 이후락 비서실장하고 정일권 총리가 한진에다 맡겼으면 좋겠다고 해서 이 실장과 몇 차례 만났다는 얘기도 있습니다만.

“오히려 장기영 부총리가 더 많이 얘기해 왔습니다. 장기영씨가 부총리를 그만 둘 때가 67년 9월인가 그렇습니다. 박 대통령이 말씀한 게 68년 초쯤이고 우리가 대한항공으로 출범시킨 것이 69년 3월이거든요. 장 부총리 때부터 정부에서는 항공사 때문에 몹시 골치를 앓고 있었다는 얘기가 되는 겁니다. 이 실장이든, 정 총리든 나하고 가깝다고 한진에 넘겨주자고 한 것이 아니다 그거예요.”

결국 조 회장은 경영난을 겪던 항공공사 인수와 에어버스 도입으로 궁지에 빠진 박 대통령을 두 번이나 구한 셈이다.

조 회장은 다음 스케줄 때문에 자리를 떴다. 곧이어 조중건 사장과 심이택(현 대한항공 부회장), 고충삼 전무(전 대한항공 고문)를 만났다. 조 사장의 말이다.

“KNA를 인수할 때부터 우리는 두 다리가 후들거리면서 한 겁니다. 청와대 들어가기 전에 우리도 회의를 했습니다. 내가 ‘베트남에서 번 거 몽땅 손 털 수 있다’고 했지요. 그랬더니 형님이 ‘내가 미쳤느냐’고 하더군요. 이러고선 그 골칫덩어리를 등에 업고 나온 거 아닙니까. 완전히 사색이 다 된 형님이 ‘야 임마, 대통령 앞에 가서 싸움을 하냐?’고 하더군요. 아시아나가 출범할 때는 특혜를 받았다는 말이 무성했지만 우린 그야말로 도살장을 눈앞에서 봤다니까요!”

“야 임마, 대통령 앞에서 싸움을 하냐?”

말씀을 듣고 보니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 했겠습니다.

“한진이 가지고 있던 자본금, 저축 외화, 또 한진의 신용도까지 몽땅 투입해 보잉 707을 사기 시작한 겁니다. 실패하면 한진까지 거지 되는 겁니다. 한진이 거지가 된다는 건 전장에서 죽음과 맞바꾼 ‘피의 달러’가 물거품이 된다는 의미예요. 정말 처량하게 시작했던 거예요. 그런데 운이 좋았던 게, 70년대가 되면서 방콕 박람회와 오사카 박람회가 열리고, 아시안게임 같은 국제대회가 개최되니까 매년 파도를 타는 거예요. 그래서 72년에 보니까 흑자야! 하하하. 얼마나 좋던지 이틀 연달아 마셨네 그랴. 하하하.”

비행기 도입 때도 에피소드가 많았다. 그중 하나가 대한항공이 세계 최초로 A-300 기종의 화물기 2대를 구입할 때였다. 심이택 부회장의 회고다.

“A-300은 처음에 리비아에 팔았던 비행기예요. 착수금만 받고 만들었는데 미국과 리비아 관계가 나빠지고, 프랑스 하고도 틀어지면서 공매 처분을 하려고 내놓은 거였어요. 그걸 회장께서 알고 가보자고 했어요. 근데 출발한 차 안에서 회장님이 손에 뭘 쥐고 계시면서 이게 뭔지 아느냐고 그런단 말이에요.”

그게 뭐였습니까.

“‘콤파스(나침반)’를 들고 있었습니다. 이 양반 말씀이 기가 막힙니다. ‘내가 꿈을 꿨어. 새벽 4시쯤 됐는데 서북쪽에서 이만한 환한 별 3개가 확 내 앞으로 달려드는 거야. 그래서 깼는데 오늘 봐서 비행기가 서북쪽으로 향하고 있으면 내가 살 거야.’ 그때 비행기가 독일 브레멘이라는 곳에 있었어요. 여기서 서북쪽은 바다 방향입니다. 그런데 비행기는 엔진에 바닷바람이 들어가면 안 되니까 전부 돌려놓게 돼 있거든요. 당연히 동남쪽을 봐야 하지요. 그래서 저는 비행기 사기는 틀렸다, 그러면서 갔어요. 그런데, 억? 비행기들이 항구 쪽으로 향하고 있단 말이죠. 그 비행기 2대를 샀는데 지금 동남아 쪽 화물기로 쓰고 있습니다.”

가격 흥정할 때는 어떻습니까?

“하여간 남의 비행기 막 깎는다고요. 당시에 그 사람들이 3200만 달러인가 달라고 했는데 2400만 달러인가 주고 샀으니까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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