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인터뷰이를 만나 보면 그 사람의 말투나 행동을 보고 상대방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기자 앞에서 모범 답안 같은 틀에 박힌 답변으로 일관하면서 자신을 철저히 숨기는 선수가 있는가하면, 버릴 것 하나 없는 솔직담백한 말로 자신을 드러내는 선수도 있다.

박성현은 후자였다. 신중하고 느릿느릿한 말투에 말수가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말할 때는 단호하고 또렷한 자세를 취했다.


코스에 선 박성현에게선 웃는 모습을 좀처럼 찾기 힘들다. 온 에너지를 다 쏟아 부어 경기에 집중하는 듯한 무표정한 얼굴, 진지한 시선은 카리스마 그 자체로 다가온다. 그러나 코스 밖에서 만난 박성현은 상대를 편안하게 할 줄도 알고, 농담을 던지는 캐릭터였다. 개구쟁이 같은 미소로 상대방을 무장해제 시키는 매력도 지녔다.

“TV 중계를 보면 제 모습이 너무 진지해서 ‘내가 맞나?’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플레이를 할 때는 저도 모르게 공에만 집중하게 되면서 그런 표정이 나오는 것 같아요. 하지만 코스 밖에서는 진지함보다는 장난기가 많은 편이에요. 잘 웃고 친구들도 좋아하고…그 모습이 진짜 박성현이라고 할 수 있죠.”

박성현을 수식할 때 그와 한 몸처럼 함께 붙어 다니는 단어는 ‘남달라’라는 애칭이다. 골프와 골프 선수 박성현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의미를 다 아는 유명한 별명이다. ‘닥공’, ‘장타 여왕’, ‘멘탈 갑’ 등 여러 애칭 중에서도 박성현이 가장 애착을 가지고 있는 별명이기도 하다.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골프를 가르쳐준 코치님에게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이야기에요. 상위권에 있는 선수들이 그 자리에 올라가는 이유는 다른 선수들보다 남다른 점이 있기 때문이라는 거였죠. 그 때부터 늘 제 머릿속에는 남달라야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박혀있어요. 제 골프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고 미친 말이었죠.”



박성현은 여자 선수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파워풀한 장타를 가졌다. 270야드가 넘는 장타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코스에서 보여주는 특유의 공격적인 플레이를 보면 ‘거침없다’라는 단어가 딱 맞아 떨어진다. 그러나 박성현은 스스로에 대해 “골프 선수로서 완벽주의자적인 성향이 있는 편”이라고 평가한다. 연습을 할 때는 더 말수도 줄고 예민해지는 편이다.

“걱정을 많이 하는 스타일이에요. 연습량에 비례해 결과가 나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죠. 그래서 스스로를 좀 다그치는 스타일이에요. 늘 최선을 다해도 되돌아보면 정말 그런 시간이었는지 아쉬울 때가 많아요. 아쉬움을 갖지 않기 위해 더 노력하는 수밖에 없죠. 엄마나 언니는 좀 쉬어 가면서 골프를 하라고 하는데 ‘연습하겠다는데 왜 말리냐’면서 종종 말다툼을 할 때도 있어요.”(웃음)

박성현은 ‘골프를 빼고는 뭐가 남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골프에 빠져 살고 있다.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투어 데뷔를 앞둔 그는 지난겨울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실시한 동계훈련 때 거의 하루도 쉬는 날 없이 클럽을 잡았다. 시즌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난 뒤에도 연습과 대회의 연속이다.

“박성현이라는 이름 앞에 ‘슈퍼루키’라는 평가를 많이 해주시니까, 사실 그게 좀 부담스러워요. 내가 정말 이런 평가를 받아도 되는 사람인가라고 늘 반문해요. 나는 정말 부족함이 많은 사람인데.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서는 결국 노력하는 수밖에 없죠.”

스스로가 생각해도 가끔은 피곤하고 여유가 없다고 느껴지는 삶이지만 그래도 당분간은 자신의 삶의 패턴을 바꿀 생각은 없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잘라 14년 째 트레이드마크처럼 유지해오고 있는 짧은 헤어스타일처럼.

“제가 머리숱이 많은 편이라 긴 머리였을 때는 관리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짧은 커트 머리는 감기 편하고 빨리 마르니까 너무 편하잖아요. ‘스타일을 바꿀 생각이 없냐’는 질문도 많이 받지만 나중에 좀 더 나이가 든 다음에 라면 몰라도 아직까지는 별로 생각이 없어요. 대신 올해는 일단 코스에서 강렬한 이미지를 주기 위해 의류 컨셉 컬러를 빨간 색으로 바꿔보기로 했어요.”

그래도 스물네 살 꽃다운 나이인데 취미나 관심사가 없냐는 질문을 건네자 박성현은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잠시 고민 끝에 “자동차”를 꼽았다. “한국에서는 잘 몰랐는데 미국에 오니까 정말 다양한 종류의 자동차가 길에 많더라고요. 처음 보는 차는 그냥 지나치지 않고 멈춰 서서 구경을 하곤 해요. 그 중에서도 스포츠카에 관심이 많아요.”

올 시즌 LPGA투어에 데뷔한 박성현은 아웃토반을 쾌속 질주하는 스포츠카처럼 무서운 스피드를 내고 있다. 공식 데뷔전인 HSBC 위민스 챔피언스 3위, 기아 클래식에서는 4위를 차지했다. 3월 25일 현재 세계랭킹은 12위다. 그래도 그는 더 액셀레이터를 밟고 싶은 듯 했다. “골프 선수라면 누구나 세계랭킹 1위를 꿈꾸잖아요. 세계적인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 그리고 저 역시 언젠가 세계랭킹 1위 자리에 올라가는 게 꿈이에요. 그 도전을 즐겨야 할 것 같아요.”

자신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특유의 중저음 보이스 톤은 점점 더 높아졌다. 자신의 길에 대한 신념과 확신 그리고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이었다. ‘남달라’ 박성현의 남다름이 뭔지를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지연 기자 easygolf@joongang.co.kr

박성현 Profile
생년월일: 1993년 9월21일
신장: 1m71cm
학력: 한국외대 국제스포츠레저학부 재학중
골프시작: 유현초등학교 2학년 때
소속: 하나금융그룹
프로데뷔: 2012년
주요 경력: KLPGA투어 통산 10승, 2016년 상금왕, 다승왕, 최저타수상
취미: 드라이브
스트레스 해소법: 잠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