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m도 채 되지 않는 퍼트가 해저드를 건네 쳐야 하는 티샷보다 두려워지고, 홀은 점점 작아져만 가는 기분. 골프를 해본 사람이라면 모두 겪어 봤을 것이다. 세계 최고의 프로 골퍼이든, 100타 깨기가 목표인 주말 골퍼이든 경고 없이 찾아올 수 있는 입스(Yips). 입스는 골프 경기에서 황당한 실수가 나오게 하는 심리 상태이며, 흔한 만큼 무서운 질병이다.

입스라는 단어를 처음 쓴 사람은 스코틀랜드의 전설적인 골퍼 토미 아머(1896~1968)라고 알려져 있다. 아머는 메이저 3승을 거뒀을 만큼 최고의 스윙을 갖추었던 선수였다. 그러나 퍼트 문제 때문에 늘 한계를 느껴야만 했다. 아머가 처음 입스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1927년 쇼니 오픈 도중이었다. 그보다 한 주 전 US오픈에서 우승했던 아머는 모두의 기대 속에 경기를 했다.

그러나 아머는 2라운드 17번 홀(파 5)에서 믿어지지 않는 ‘23타’라는 스코어를 기록했다. 단 한 홀에서 18오버파를 친 것이다. 라운드가 끝난 뒤 혼란스러움에 빠진 아머는 “입스가 일어난 것 같다”고 했다. 아머는 이후 “입스는 한 번 오면 절대 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 후로 입스라는 단어는 전 세계 골퍼들에게 익숙한 단어가 됐다.

골프 역사 속 전설의 골퍼들 중에 입스로 고생한 선수는 아머뿐이 아니었다. 메이저 9승을 거두며 교과서적인 스윙으로 유명했던 벤 호건(1912~1997)도 선수 말년에 큰 교통사고를 겪은 뒤 퍼팅 입스가 찾아왔다. 호건은 퍼트를 하려고 어드레스를 한 뒤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본인의 모습이 너무 창피했다고 했다. 입스 때문에 퍼트 연습에서 서서히 흥미를 잃은 호건은 결국 골프와 거리를 두게 되었다.

미국프로골프협회(PGA)투어 최다승(82승) 기록을 세운 샘 스니드(1912~2005) 역시 입스 때문에 고생했다. 스니드는 답답한 마음에 퍼트 자세를 완전히 바꾸기까지 했다. 홀을 바라보고 정면으로 선 뒤 공을 몸 앞에 두는 크로케 스타일로 퍼트를 했다. 그러나 스니드의 독특한 자세는 결국 규칙 위반이라는 제재를 당했고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에는 규칙 위반으로 사라졌던 그의 스타일이 최근에 다시 회자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경주는 2010년에 잠시 퍼트 때문에 고생하면서 크로케 퍼팅을 시도했다. 지난해에는 괴짜 루키로 유명세를 탄 브라이슨 디섐보가 스니드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퍼팅 자세를 선보였다.


PGA 82승의 샘 스니드도 입스 문제에서는 자유롭지 못했다.

‘살아있는 전설’ 톰 왓슨 역시 퍼트 입스 때문에 고생했다. 왓슨은 무려 10년 넘게 입스를 겪었고, 퍼트 때문에 10번 이상 우승컵을 놓쳤다. 입스는 늘 그렇듯 가장 치명적인 순간에 왓슨을 놓아주지 않았다. 왓슨은 2009년 디 오픈 챔피언십 마지막 홀에서 파만 기록하면 역대 최고령인 59세의 나이로 메이저 우승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왓슨은 2m가 조금 넘는 파 퍼트를 터무니없이 약하게 치는 바람에 우승컵인 클라레 저그를 스튜어트 싱크한테 빼앗겼다.

최근에 입스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선수는 어니 엘스다. 엘스는 지난해 마스터스 1번 홀부터 6퍼트를 하면서 굴욕감을 맛봤다. 첫 번째 퍼트를 1m 이내로 친 엘스는 눈감고도 넣을 만한 퍼트를 끊임없이 놓치면서 결국 6퍼트를 하고 말았다. 함께 라운드를 한 제이슨 데이가 “난생처음 보는 일”이라며 안타까워할 정도였다.


지난해 마스터스 1번 홀에서 6퍼트를 한 어니 엘스.

엘스는 라운드가 끝난 뒤 “머릿속에 뱀들이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라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지금 당장 연습 그린에서 1m 퍼트를 20번 연속이라도 넣을 수 있다. 하지만 코스에 나가면 달라진다”며 “입스 때문에 골프를 그만두는 선수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 역시 몇 년 전 치핑 입스를 겪었다. 우즈는 한 라운드에 몇 번씩 칩샷을 하면서 생크, 뒤땅, 토핑을 냈다. 우즈는 “스윙을 바꾸며 쇼트게임 연습량이 줄어 실수가 나온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은 달랐다.

우즈의 코치였던 행크 해니는 우즈가 치핑 입스를 겪고 있다고 확신했다. 해니는 “우즈 정도의 선수가 기술적인 문제로 이렇게 오래 시달릴 리는 없다”고 했다. 해니 본인도 입스를 20년 동안 겪었으며 우즈의 동작을 보면 칩샷을 서두르는 것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해니는 우즈가 매주 언론의 시선에 극도의 부담감을 느꼈고, 한두 번의 실수가 이어지면서 입스로 발전되어 버린 것 같다고 추측했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생크, 뒤땅, 토핑 등 칩샷 입스로 고생했다.

캐나다 출신의 그래엄 드라엣은 지난해에 심각한 쇼트게임 입스로 우승컵을 놓쳤다. 드라엣은 그린 주변에만 가면 생크와 토핑을 한 홀에 몇 번씩이나 내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메모리얼 토너먼트에서는 그린 주변에서의 불안감 때문에 기권을 했다. 그 후로 한 달 동안 대회에 출전하지 않았지만 입스를 고치는데 실패했다. 드라엣은 지난해 10월 샌더슨 팜스 챔피언십에서 최종일 선두였지만 11번 홀에서 치핑을 하다가 또 생크를 냈고 우승을 놓치고 말았다.

대부분의 스포츠 심리전문가들은 입스는 심리적인 원인이 크다고 의견을 모은다. 패트릭 콘 박사는 “대부분의 골퍼들이 입스를 겪는 이유는 두려움, 주로 실패의 두려움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콘은 “연습량에 비해 늘지 않는 것을 두려워할 수도 있고, 라운드 동반자들의 비웃음과 시선을 두려워하는 것일 수도 있다”며 “일차적으로 본인의 두려움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골프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포츠 심리전문가인 밥 로텔라 역시 “퍼트 입스를 고치기 위해서는 심리적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로텔라는 “퍼트 입스를 겪는 골퍼들은 퍼트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퍼트를 놓쳐도 아쉬워하지 말고, 누구나 실수는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의 운동의학 연구들을 보면 입스가 사실 심리적 현상이 아닌, 신체적 문제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해니는 “입스는 뇌에서 근육으로 잘못된 신호를 전달해 순간적으로 의도치 않는 동작을 하게 되는 것”이라며 “긴장을 해서 손을 떠는 게 아니라, 손이 떨려서 긴장까지 하게 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미국의 스포츠 심리학자 데비 크루즈는 “실험을 해보면 대부분의 골퍼들은 본인이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입스를 겪는다”고 주장했다.

필 미켈슨의 쇼트게임 코치로 유명한 데이브 펠츠는 이러한 연구에 맞는 해결책을 제안하고 있다. 펠츠는 “많은 골퍼들이 안 좋은 퍼트 자세로 인해 퍼트를 자주 놓치게 되며 자신감이 하락하면서 입스를 겪는 것”이라고 했다. 펠츠는 입스를 해결하려면 퍼트 자세의 문제점들을 먼저 고쳐야 한다고 보고 있다. 패트릭 콘 박사는 자유로운 퍼트 동작을 하기 위해선 체력 운동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최근 몇몇 회사들은 입스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용품들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헤비 퍼터’는 이름에 맞게 보통 퍼터들보다 두 배에 가까운 중량을 가진 제품으로 퍼터 헤드의 무게와 균형을 만들기 위해 그립을 훨씬 무겁게 만들었다. 이를 통해 손목 등의 작은 근육들이 움직이지 못하게 하도록 했다. 올해 출시 예정인 타이크 T1(Tyche T1)은 입스를 없애는 연습용품이다. 특별 센서로 입스의 정도를 측정한 후 문제에 적합하게 각 골퍼의 퍼트 자세를 고쳐주는 신기술을 사용한다.

이런 상품들이 골퍼들의 입스를 해결해줄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반응은 다양하게 갈린다. 그러나 분명한 건 입스는 원인이 어디에 있든 아머의 말처럼 “한 번 오면 쉽게 가지 않는다”는 것이며, 입스에 대응하는 방식도 점차 발전하게 되리라는 점이다.

이시연 기자 siyeonlee1219@gmai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