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세계 최고의 선수였던 타이거 우즈는 올해 부상을 안고 출전한 단 2개의 대회에서 초라한 성적을 낸 뒤 대중의 시선에서 점점 잊히고 있었다. 그러다 지난 5월 29일 새벽 음주 운전 혐의로 전격 체포되면서 전 세계 모든 골프 팬들에게 또다시 충격을 안겼다.

엔진을 켜놓은 채 운전석에서 잠이 든 상태로 발견된 우즈의 모습은 생소했고, 대회란 대회는 모두 휩쓸고 다녔던 시절과는 거리가 너무나 먼 모습이었다. 며칠 뒤 우즈의 혐의는 음주가 아닌 항불안제?진통제 등 약물을 복용했던 것이라고 밝혀졌으며, 우즈는 2010년에 이어 다시 한 번 약물중독 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했다. 그러나 골프계에선 우즈가 약물중독에서 헤어 나오기 힘든 단계에 이른 것으로 보고 있다.

‘신사의 게임’이라고 불리는 골프에서 술이나 약물 관련 논란은 어울리지 않아 보일지 모르지만 우즈와 같은 사건은 절대 전례 없는 일은 아니었다. 현 남자 골프 세계 랭킹 1위 더스틴 존슨도 2014년 시즌 도중에 갑작스럽게 투어 활동을 쉬겠다고 선언한 적이 있다. 부상도 아닌 ‘개인적인 문제’로 한 시즌을 포기한 존슨에 대한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결국 존슨의 휴식은 자의적인 것이 아닌 미국프로골프협회(PGA)투어로부터 6개월의 출장 정지를 받은 것이라는 후속 보도가 나왔다. 존슨이 징계를 받은 이유 역시 약물 복용이었다. 세 차례 도핑 테스트에서 대마초, 코카인 양성 반응이 나왔다는 것이었다.

물론 존슨과 PGA투어는 이를 즉각 부인했다. 존슨은 “약물이 아닌 폭음 문제 때문”이라며 “술을 자주 마신 것은 아니지만 한번 마실 때 너무 많이 마시던 습관이 문제가 됐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그의 해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이는 많지 않았다.


더스틴 존슨은 2014년 약물 복용 문제로 시즌을 포기하기도 했다.

◆ 투어 생활에 대한 스트레스로 유혹에 빠져

존슨보다 공개적으로 자신의 음주로 인한 문제에 대해 밝힌 선수들도 몇몇 있다. ‘메이저 우승이 없는 최고의 선수’였던 리 웨스트우드는 24년의 프로 생활 동안 주당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웨스트우드의 기량이 떨어지거나, 체중이 급격히 증가할 때면 사람들은 어김없이 그의 음주에 대해 의심해 왔다.

웨스트우드는 2010년에 금주를 결심한 적이 있다. 그해에 웨스트우드는 8kg을 감량했고, 메이저 대회인 마스터스와 디 오픈에서 각각 2위를 차지했다. 10월 말에는 타이거 우즈를 제치고 세계 랭킹 1위 자리에 오르며 최고의 컨디션을 자랑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의 팀 대항전인 라이더컵에서 팀이 우승한 것을 계기로 다시 입에 술을 댄 것이 그에게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이후 다시 부진에 빠진 웨스트우드는 “딱 하루 술을 마셨지만 몸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좋아지고 있던 종아리 부상이 심해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웨스트우드는 이후로도 술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했다. 2013년 PGA 챔피언십 마지막 라운드에서 6오버파 76타를 기록하며 선두권에서 밀려나 버린 뒤 폭음을 했다. SNS에서 자신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자 팬들을 향해 ‘겁쟁이’, ‘멍청이’라고 조롱하며 논란에 휩싸였다.


한동안 금주했던 리 웨스트우드는 2010년 라이더컵에서 다시 입에 술을 댄 후 부진에 빠졌다.

한때 ‘포스트 타이거’로 불렸던 앤서니 김의 추락도 술과 연관이 적지 않다. 2000년대 후반 PGA투어에서 3승을 거두며 승승장구했던 앤서니 김은 술과 관련된 크고 작은 루머에 휩싸이며 결국 추락했다. 앤서니 김은 2010년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저스틴 팀버레이크 슈라이너스 호스피털 오픈에서 엄지손가락 부상을 이유로 기권한 뒤 전날 밤 연 파티 소식 때문에 홍역을 치렀다. 대회 전날 클럽에 들른 앤서니 김이 술 115병을 산 뒤 2만5000달러짜리 샴페인을 바닥에 뿌리는 등 흥청망청 논 것이 문제가 됐다. 앤서니 김은 “라스베이거스에서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은 사실이지만 기권과는 관련이 없다. 부상 때문에 의사가 수요일 프로암 전까지 골프 연습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한 매체에서 월요일에 친구와 지인 24명과 대회장에 오면서 그들과 함께 클럽에 갔다는 보도가 나왔다. 앤서니 김은 “100년 된 코냑을 마셨다는 등의 보도는 너무 과장됐다. 코냑이 무슨 맛인지도 모른다”고 해명했지만 파장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2011년부터 내리막을 타기 시작한 앤서니 김은 2012년 시즌을 끝으로 투어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현재로서 앤서니 김의 투어 복귀는 사실상 힘들어 보인다. 앤서니 김은 2014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골프는 이제 좋은 추억”이라고 말했다. 매체에서는 앤서니 김이 18개월째 라운드를 끝까지 돈 적이 없다고 보도했다. 앤서니 김은 2016년 몇 차례 자선 대회에 참가했지만 그가 다시 프로 대회에서 경쟁력을 갖출 가능성은 쉽지 않아 보인다.

‘전설의 골퍼’ 톰 왓슨도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2000년대를 전후해 술 때문에 힘든 시간을 보냈다가 극복한 선수였다. 왓슨은 “더 이상 술은 한 모금도 안 마신다. 4, 5년 전에 그만뒀다. 너무 많이 마시고 있었고, 술에 취한 내 모습이 맘에 안 들었다. 술을 마시지 않으니 모든 것이 달라 보인다. 전혀 그립지 않다”고 했다. 왓슨은 2009년 디 오픈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이후 술 때문에 힘들었던 과거사를 고백하고 술과 완전히 절연했다.

◆가벼운 맥주 한 잔은 스트레스 해소될 수도

골프계에서 술 때문에 각종 사건 사고에 휘말린 대표적인 애주가는 존슨도, 웨스트우드도 아닌 바로 ‘필드의 악동’ 존 댈리였다. 댈리의 악명 높은 음주 습관은 대학교 시절부터 시작됐다고 알려져 있다. 당시 체중을 감량하지 않으면 학교에서 골프를 하지 못할 위기에 처했던 댈리는 오로지 위스키와 팝콘만 먹으면서 두 달 동안 30kg을 뺐다고 한다. 댈리는 알코올 중독에 가까울 정도로 술을 마시면서도 1991년 PGA 챔피언십, 1995년 디 오픈에서 우승하는 믿기 힘든 기량을 보였다.

그러나 결국 성적이 나오지 않기 시작하자 그의 알코올 중독은 심각해졌다. 댈리는 PGA투어에서 출장 정지를 다섯 번이나 선고 받았다. 여러 번이나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아봤지만 큰 효과가 없었다. 2008년에는 식당에서 술에 취해 쓰러진 뒤 응급 치료를 받았고, 병원에 가기를 거부하면서 감옥에서 하룻밤을 보낸 적도 있다. 심지어 댈리는 라운드 도중에 음주를 한 적도 있다고 고백했다. 첫 9홀을 마친 후 맥주를 다섯 병 정도 마시고도 마지막 9홀을 3, 4언더파로 마무리했다는 자랑 아닌 자랑을 해댔다.



골프계에서 술 때문에 각종 사건에 휘말린 선수는 바로 필드의 악동 존 댈리다.

물론 한때는 경기 중 음주가 일반적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한 시대를 풍미했던 ‘골프 전설’ 잭 니클라우스는 “내 시절엔 대부분의 선수들이 클럽 프로들이었다. 보통 라운드가 끝나면 다 같이 술 한 잔씩을 하곤 했다. 대회 도중에도 그랬다. 물론 나는 대회 도중에 술을 마신 적은 없지만 당시에는 그런 행동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요즘 투어에서 술잔을 찾기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어니 엘스는 2012년에 금주를 시작했고, 바로 한 달 뒤에 42세의 나이에 디 오픈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20년째 PGA투어에서 활동하고 있는 스튜어트 싱크는 “PGA투어에 있었던 20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상금은 훨씬 많아졌고 선수들은 더 튼튼해졌다. 모든 선수들이 술이 야기하는 악영향을 알고, 아무도 음주의 장점을 찾진 못했다”고 말했다. 유명한 8자 스윙으로 PGA투어 17승을 거둔 짐 퓨릭은 “톱 랭커 중에서는 음주 문제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없다. 선수들도 사람이니 술을 마실 수 있지만 술로 인한 심각한 문제가 있으면 결국엔 투어에서 오래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이시연 기자 siyeonle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