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틴(Routine). 일관된 샷을 하기 위해 루틴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아마추어 골퍼들 중 루틴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루틴이 대체 뭐기에 프로 골퍼들은 이렇게 중요시하는 것일까? 프로들의 루틴에서 그 답을 찾았다.

타깃을 바라보며 빈 스윙 두 번. 뒤로 물러선 뒤 클럽을 땅에 한 번 ‘툭’. 세 발자국 앞으로 다가서며 어드레스를 취하고, 클럽을 좌우로 흔들며 왜글(클럽을 좌우로 흔들며 긴장을 풀어주는 동작)을 두 번 한다. 다시 타깃을 바라본 뒤 한 번 더 왜글을 해주고 1초 안에 스윙을 한다. 타이거 우즈가 티샷을 날리기 전 행하는 프리 샷 루틴(Routine)의 순서다. 우즈는 “내가 좋은 샷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늘 같은 루틴을 따르기 때문”이라고 루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즈뿐 아니라 모든 선수들은 자신만의 루틴을 지니고 있다. 선수들마다 루틴의 절차나 행동은 조금씩 다르지만 루틴을 하는 목표는 같다. 바로 ‘좋은 샷’을 만들기 위해서다.

◆ 폐쇄형 종목인 골프, 루틴 중요성 부각

루틴의 사전적 의미는 ‘특정한 작업을 실행하기 위한 일련의 명령’이라는 컴퓨터 용어로 나온다. 스포츠 경기에서의 루틴은 ‘시합이라는 특정한 상황에서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행하는 동작’ 정도로 볼 수 있다. 국가대표 출신인 송태훈 한국체육대학교 골프 팀 코치는 “시합 때는 중압감으로 인해 100%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어렵다. 그래서 반복적이거나 편안함을 느끼는 행동을 해주면서 긴장감을 덜고 최고의 컨디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왜 다른 스포츠에 비해 골프에서 루틴이 더욱 강조될까? 김한별 한국체육대학교 심리학 교수는 “주로 개방형 종목보다 폐쇄형 종목에서 루틴이 강조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다. 축구?농구와 같이 팀플레이 위주로 이뤄지는 경기를 개방형, 골프나 양궁?사격같이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경기는 폐쇄형 종목이다. 폐쇄형 종목은 상대와의 대결보다 ‘자신과의 싸움’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심리적인 부분이 더 중요하게 작용된다. 루틴이 더욱 강조되는 이유다. 농구의 자유투, 야구의 타석 등에서도 루틴이 활용된다.

◆ 루틴과 징크스의 상관관계


김세영은 마지막 날 항상 빨간 바지를 입고 출전한다. 그의 루틴이자 트레이드 마크다.

루틴과 비슷한 용어로 징크스(jinx)가 있다. 둘은 어떠한 행동으로 인해 심리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김 교수는 “학계에서도 루틴과 징크스의 차이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가장 큰 차이는 관념적이냐 행동적이냐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투어에서 활약하는 김세영을 예로 들어보자. 김세영은 대회 마지막 날 항상 빨간 바지를 입는다. 김세영의 아버지가 사주를 보러 갔다가 빨간색이 잘 맞는다는 말을 듣고 김세영에게 조언을 해줬고, 이후 김세영은 빨간 바지를 입고 국내 무대 5승, LPGA투어 6승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김세영은 “빨간 바지를 입으면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고 기운이 샘솟는다”고 말했다. 김세영이 ‘빨간 바지를 입으니까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네’라는 생각을 갖고 있을 때 이것은 징크스다. 반면 김세영이 ‘심리적인 안정’을 위해 의도적으로 빨간 바지를 입는 행동을 반복한다면 이것은 하나의 루틴으로 볼 수 있다. 김 교수는 “좋은 징크스를 의도적으로 반복해 자신만의 루틴으로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많은 골퍼들이 숫자나 옷에 관련한 징크스를 루틴으로 연결시켜 사용하고 있다. 박인비는 경기 때 4번이 적힌 공을 사용하지 않는다. 양용은은 지난 2009년 타이거 우즈를 꺾고 아시아 선수 최초로 우승컵을 들어올린 PGA 챔피언십 때 사용했던 3번 공을 애용한다. 마지막 날 우즈가 입는 붉은 셔츠는 우즈의 상징이 됐다. 우즈는 염소자리인 자신에게 붉은색이 힘을 준다는 어머니의 조언을 듣고부터 붉은 계열의 옷을 입었다. 이미향은 마지막 날 남색과 같은 짙은 계열의 옷을 입는 것을 선호한다.

◆ 하나부터 열까지 루틴, 시계처럼 반복

프로 골퍼들의 일상은 루틴으로 가득 차 있다. 시합 전날 취침 시간부터 기상 시간, 먹는 음식까지 신경 쓴다. 이미향은 “시합 기간에는 소고기를 절대 안 먹고 돼지고기를 먹는다. 돼지고기를 먹을 때 속이 더 편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심지어는 볼일을 볼 때 변기에 몇 방울이 튀는지 신경 쓰는 골퍼도 있다고 하니 루틴에 따른 심리적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선수들이 루틴에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시간을 지키는 것이다. 세계 랭킹 3위 조던 스피스는 정확히 티샷 75분 전에 그라운드에 나타난다. 첫 15분은 퍼트 점검 시간이다. 스트로크 12번, 4피트 퍼트 12번, 7피트 퍼트 12번의 순서로 연습을 한다. 퍼트 연습이 끝나면 샷 연습이다. 웨지로 시작해 아이언, 하이브리드, 우드, 드라이버로 이어지는 연습을 35분 동안 한다. 이후에는 9번의 칩샷과 8번의 벙커샷을 10분에 걸쳐 시행한다. 마지막 15분은 다시 퍼트다. 그린으로 돌아와 21번의 퍼트 연습을 더 한다.

여자 골프 세계 랭킹 1위 유소연도 스피스처럼 연습 시간을 철저히 지킨다. 경기 시작 90분 전에 대회장에 도착해 스트레칭-치핑-퍼트-샷 순서로 연습을 시행한다. 유소연은 “루틴은 상당히 중요하다. 루틴이 깨지면 당연히 흐름도 깨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 세계 랭킹 1위 리디아 고는 “아마추어 때는 2시간 전부터 나와서 연습했는데 프로에 와서는 1시간 30분 정도 연습을 한다. 루틴은 리듬감 유지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파라과이의 골프 영웅 카를로스 프랑코에게는 다른 선수들과는 사뭇 다른 자신만의 워밍업 방법이 있다. 프랑코의 워밍업 시간은 ‘0분’이다. PGA에서 가장 게으르기로 유명한 프랑코는 연습을 하기 싫어 가벼운 스트레칭만으로 몸을 푼 뒤 경기에 임한다. 하지만 ‘게으른 천재’ 프랑코는 PGA투어에서 4승을 거두는 등 빼어난 활약을 펼쳤다.

◆ 이색 루틴은 또 하나의 볼거리


리디아 고는 퍼트 전 에임포인트 익스프레스 방법으로 퍼팅 라인을 읽는 루틴을 갖고 있다.


자신만의 특별한 루틴으로 갤러리들의 이목을 끄는 선수들도 있다. 리디아 고는 퍼팅 라인을 살필 때 손가락을 편 뒤 사격을 하듯이 한쪽 눈을 지그시 감는다. ‘에임포인트 익스프레스’라고 불리는 방법으로 그린의 경사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설명이다. 콜롬비아의 카밀로 비예가스는 독특한 루틴 자세로 ‘스파이더맨’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퍼팅 라인을 읽을 때 지면에 바짝 엎드린다. 엎드린 채 한 손은 퍼터를, 다른 한 손은 땅을 짚고 한쪽 무릎을 구부려주는 동작이 스파이더맨을 연상케 한다. 그는 “2005년에 퍼트 방법을 연구하다 이 방법을 발견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이 자세에서 어떻게 스파이더맨을 떠올렸는지 재밌다”고 말했다.



'스파이더맨'이라는 별명을 얻은 카밀로 비예가스.


하지만 과도한 루틴은 팬들의 빈축을 사기도 한다. 재미동포 케빈 나가 대표적이다. 케빈 나는 지난 3월 PGA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느림보 골퍼 2위에 올랐을 만큼 슬로 플레이로 유명하다. 케빈 나는 2012년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당시 열 번이 넘는 왜글로 갤러리들의 야유를 받았다. 결국 3라운드까지 선두를 달렸던 케빈 나는 마지막 날 4오버파로 무너지며 맷 쿠차에게 우승을 내줬다. 이후 케빈 나는 루틴 교정을 시도하며 ‘슬로 플레이어’라는 오명을 지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반면 애런 배들리는 같은 조사에서 퍼트의 달인 2위에 오를 정도로 퍼트에 능한 선수다. 배들리의 퍼팅 루틴은 간결하다. 공 뒤에서 라인을 살핀 뒤 2~3번 연습 스트로크를 한 후 망설임 없이 공을 굴린다. 배들리는 초고속 퍼팅 루틴을 앞세워 PGA투어에서 네 차례 정상에 올랐다.

◆ 자신에게 알맞은 루틴 찾기

프로 선수들에게도 좋은 루틴을 찾는 것은 엄청난 시행착오가 따른다. 재미동포 제니퍼 송은 “중?고등학교 때부터 계속해서 나에게 맞는 루틴을 찾아왔다”며 “선수들은 계속해서 좋은 루틴을 찾는다. 코치와 의논을 해보기도 하고, 심리 코치에게 상담을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아마추어 골퍼들에게도 루틴은 스코어를 줄이는 데 좋은 역할을 한다. 김 교수는 “루틴을 일정하게 지키는 것은 심리적 안정뿐 아니라 좋은 샷을 쳤을 때의 느낌을 기억할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물론 어떤 루틴이 좋은 루틴이라고 과감하게 단정 짓기는 힘들다. 사람마다 제각기 맞는 루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 가지 팁을 제공하자면 복잡한 루틴보다는 간결한 루틴을 가져가는 것이다. 김 교수는 “골프처럼 루틴이 중요한 사격에서 불필요한 루틴을 제거했더니 오히려 좋은 성적이 나왔다”며 “골프에도 비슷한 방법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봉근 기자 shin.bonggeun@join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