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여제’ 박인비조차 부러워하는 열정의 소유자 유소연. 항상 진취적인 자세로 삶과 골프를 대하는 유소연이 마침내 세계 랭킹 1위로 올라섰다. 자기 주관이 뚜렷한 유소연은 어떤 질문을 하더라도 사이다처럼 똑 부러지는 시원한 답변과 해답을 내놓는다. 그의 골프처럼 말이다.

◆ 운명 같은 태극 마크와 세계 랭킹 1위

2006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앳된 얼굴의 소녀가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4라운드 합계 29언더파(263타)라는 기록적인 스코어로 개인전과 단체전 금메달을 휩쓴 주인공은 16세 유소연이었다. 경기 내내 표정 변화 없이 무서운 집중력을 보여줬던 유소연은 시상대 꼭대기에서 애국가를 들으며 눈물을 훔쳤고 이 모습은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당차고 다부진 유소연은 어린 시절부터 한국 여자 골프를 이끌어갈 재목으로 꼽혔다. 국가대표로 활동하면서 에이스 역할을 해냈고, 2008년 프로로 전향하자마자 데뷔 뒤 첫 대회인 김영주 여자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 투어에서 7승을 거둔 유소연은 2011년 열린 최고 권위의 메이저 US여자오픈에 초청 선수로 출전해 우승컵까지 들어올렸다. 2012년부터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투어로 활동 무대를 옮긴 유소연은 지난해까지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양 투어에서 2개씩 우승컵을 더 들어올렸다.

올 시즌은 화룡점정이다. 지난 6월 월마트 NW 아칸소 챔피언십에서 정상에 오른 유소연은 에리야 쭈타누깐(태국)을 밀어내고 역대 11번째로 여자 골프 세계 랭킹 1위에 올랐다. 한국 선수로는 신지애, 박인비에 이어 세 번째 쾌거다. US여자오픈이 열린 미국 뉴저지 주 베드민스터의 트럼프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만난 유소연은 “골프클럽을 잡은 뒤 항상 꿈꿔왔던 순간이 이뤄졌다.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라며 활짝 웃었다.

유소연은 이제 한국 여자 골프를 대표하는 스타로 발돋움했다. 유소연은 모자에 태극 문양의 볼마커를 달고 다닌다. 그는 “1년 전부터 태극기 볼마커를 사용하고 있다. 2016년 인터내셔널 크라운 때 하나금융그룹 회장님이 선물로 선수들에게 주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소연은 태극 마크를 달면 누구보다 강해진다.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을 시작으로 한·일 여자골프대항전에 여러 차례 한국 대표로 출전해 수많은 승전보를 전했다. 2016년 여자 골프 국가 대항전인 인터내셔널 크라운에서 한국 팀 주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태극 마크 볼마커를 달고 있으면 한국 대표로 출전한다는 책임감 같은 게 생긴다. 행동이 조심스러워지고 모든 것들을 바르게 해야 한다는 마음이 든다”고 털어놓았다.



태극 마크는 기분 좋은 압박감과 부담감이다. 유소연은 “태극 마크를 달고 나갈 때마다 책임감을 느낀다. 나를 위해 경기하는 것보다 나를 응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경기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그런지 결과도 좋았다”고 설명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태극 마크 볼마커를 하고 경기에 나선 유소연은 메이저인 ANA 인스퍼레이션을 포함해 LPGA투어에서 2승을 챙겼고, 세계 1위 등극에도 성공했다. 태극 마크는 마음의 위안이기도 하다. 그는 “해외 투어 일정은 생각보다 더 외롭고 힘들다. 하지만 태극 마크를 달고 출전하는 인터내셔널 크라운 같은 대회에서는 서로를 위로하면서 진한 동료애와 팀워크를 느낀다”고 말했다.

◆ ‘우상’ 박인비 걸어간 길 밟고 있는 유소연

박인비와 유소연은 널리 알려진 대로 절친한 사이다. 둘은 친한 ‘언니와 동생’ 사이고, ‘친구이자 파트너’다. 대회장에서는 물론이고 코스 밖에서도 둘은 자주 어울리며 서로 의지하고 있다.

두 살 언니인 박인비는 유소연보다 항상 앞서 나갔다. 메이저 제패도, 세계 랭킹 1위의 길도 박인비가 먼저 걸었다. 곁에서 1인자였던 박인비를 우러러봤던 유소연은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은 끝에 마침내 세계 1위에 올랐다. 그래서 유소연에게 박인비의 존재는 더 고맙게 느껴진다. 유소연은 “아무래도 언니가 세계 1위를 오랫동안 했고,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봐 왔기 때문에 얼마나 어려운 자리인지, 또 책임감이 필요한 자리인지 간접경험을 많이 한 것들이 도움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세계 랭킹 1위 자리를 계속해서 지켜나가고 싶은 유소연의 주위에는 금쪽같은 말들이 맴돌고 있다. 살이 되고 뼈가 되는 조언들이다. 유소연은 “인비 언니가 KPMG 여자 PGA 챔피언십에서 했던 인터뷰를 봤다. ‘항상 잘 해야 된다는 부담감 때문에 힘들었다’는 언니의 말 그대로 세계 1위에게는 모두의 기대치가 높다”라며 “인비 언니가 ‘1위건 10위건 100위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얘기했다. 언니 말처럼 사람은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언니한테 정말 많이 배웠다”고 고백했다.

박인비와 유소연은 서로에게 자극이 되고 도움이 되는 관계다. 선의의 경쟁자이자 동반자로서 이상적인 관계라 볼 수 있다. 박인비는 유소연의 장점을 크게 봤다. 박인비는 “소연이는 어쩔 땐 친구, 어쩔 땐 믿음직스러운 언니처럼 느껴진다”며 “샷은 물론 멘털적으로도 항상 준비된 선수다. 충분한 자질을 가진 만큼 앞으로도 좋은 커리어를 계속해서 이어나갈 것”이라고 평가했다.

박인비는 무엇보다 유소연의 열정을 높이 산다. 유소연을 ‘디테일 퀸’으로 부르기도 했다. 박인비는 “내가 열심히 안 산다는 건 아니지만 소연이만큼 모든 일에 열정을 쏟지는 않는 것 같다. 특히 소연이는 사람을 대할 때 세심하게 상당히 성의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부러워했다. 유소연에게 ‘스나이퍼’라는 별명을 붙여준 것도 박인비였다. 항상 웃는 모습을 보이지만 목표를 정하면 타깃을 놓치지 않는다는 게 그 이유였다.

유소연과 박인비는 LPGA투어 첫 승을 가장 권위 있는 대회인 US여자오픈에서 수확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다른 점도 있다. 유소연은 ‘슬럼프가 없는 박인비’라 표현할 수 있다. 2012년 LPGA투어 데뷔 후 한 번도 슬럼프를 겪은 적이 없다. 항상 상금 랭킹 톱 10에 드는 등 꾸준한 기량을 뽐내왔다. 2008년 US여자오픈 제패 후 3년 정도 슬럼프를 겪으며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던 박인비와는 다른 행보다.

◆ 진화하는 유소연의 다음 목표는 골프 여제 자리매김

유소연은 그토록 그리던 세계 랭킹 1위 꿈을 이룬 뒤 현재 꿈속을 걷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만족하지 않는다. 세계 0위는 없지만 더 올라가야 하는 목표는 분명히 있다. 유소연은 “세계 1위를 최대한 오랫동안 유지하는 게 다음 목표다. 그러기 위해선 끊임없이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소연은 ‘꾸준함의 대명사’로 불린다. 꾸준함의 비결 중 하나는 바로 리더보드를 보지 않는 것이다. 그는 “다른 선수와 비교하기보다 내 경기에 집중하고 즐기고 싶어 리더보드를 자주 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세 번째 메이저 대회인 US여자오픈에서 공동 3위를 차지한 유소연은 세계 랭킹 포인트 격차를 벌리는데 성공했다. 그는 “간격이 조금 더 났다고는 하지만 언제 경쟁자들이 치고 올지 모른다. 다른 선수들의 점수와 성적에 신경을 쓰는 것보다 내 골프를 향상시켜 나가야 하는 게 최우선 과제”라고 똑 부러지게 말했다.




유소연은 2012년 LPGA투어 데뷔 후 처음으로 한 시즌에 다승을 수확하고 있다. 메이저 우승도 차지했다. 시즌 초 세웠던 3승 목표도 눈앞에 와 있다. 유소연은 “다음 목표를 크게 생각해보진 않았는데 일단 최대한 많은 우승을 차지해보고 싶다. 또 메이저 대회에서 한 번 더 우승을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ANA 인스퍼레이션 우승 후 ‘커리어 그랜드슬램’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유소연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유소연이 가장 좋아하는 대회는 브리티시 여자오픈이다. 그는 “2012년 브리티시 오픈 당시 처음으로 링크스 코스를 경험했다. 날씨가 좋지 않았지만 링크스 코스의 매력에 푹 빠졌다. 가장 좋아하는 대회이자 전통 있는 대회에서 우승하고 싶다”고 밝혔다. 견고한 샷을 뽐내고 있는 유소연이기에 머지않아 링크스를 정복할 가능성도 높다. 유소연은 지난 6월 숍라이트 클래식에서 컷탈락하기 전까지 2년 반 동안 64경기 연속 컷통과 행진을 벌인 바 있다.

유소연은 목표 달성을 위해서 앞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는 “최근 배운 가장 큰 교훈 중 하나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것이다. 골프의 결과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다. 다만 연습을 어떻게 하고, 대회를 어떻게 준비하느냐는 통제할 수 있다”며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들을 걱정하기보다 항상 대회 준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유소연은 ‘한국 선수들이 골프를 잘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최근에 가장 많이 듣고 있다. 유소연은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항상 하는 답변이 있다. “박세리, 신지애, 박인비 등 훌륭한 롤모델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유소연은 주니어 골퍼들에게 또 다른 롤모델이 되고 있다.

◇유소연 profile
생년월일 : 1990년 6월 29일
신체조건 : 168cm, 58kg
프로 데뷔 : 2008년
소속 : 메디힐
장기 : 아이언 샷
LPGA 통산 승수 : 5승(2011 US오픈, 2012 제이미 파 톨레도 클래식, 2014 캐나다 여자오픈, 2017 ANA 인스퍼레이션·월마트 아칸소 챔피언십)
세계 랭킹 : 1위(역대 통산 11번째)
주요 이력 : 2006 도하 아시안게임 2관왕(개인·단체), 2012 LPGA 올해의 신인, 2016 인터내셔널 크라운 한국 대표

김두용 기자 enjoygolf@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