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둘이 뭉쳐 하나로, 세계로

20대 초·중반의 나이에 미래까지 약속한다는 건 요즘 시대의 흐름에 비쳐보면 빠른 결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운동선수들의 경우 가정이 생긴 뒤 잘 풀리는 경우가 많다. ‘결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에 대해 묻자 “싸우면서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다소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이형준은 “자주 싸우는 편이다. 싸운 후 항상 여자 친구가 먼저 와서 미안하다고 한다. 내가 잘못한 게 있어도 수빈이가 먼저 사과한다”며 “그러면 또 마음이 약해져서 다 받아주는 성격이다. 이런 게 반복되다 보니까 ‘헤어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수빈이가 나이는 어리지만 웃어른들에게 잘 하는 모습에 또 한 번 반했다”고 털어놓았다.

결혼 결심을 한 건 2016년 연말부터였다고 한다. 홍 씨는 “지금은 내가 오빠를 더 좋아하기 때문에 맞춰주고 있어서 안 싸우지만 예전에는 떨어져 있고 못 만나니까 더 싸웠다”라고 말했다. 순간 이형준이 “수빈이가 잘못했던 게 더 많았던 것 같다”며 ‘용감하게’ 내뱉었다. 그 말에 홍 씨가 “이기적이야”라고 몰아붙이자 이형준도 이에 질세라 “너도 이기적이었어”라고 맞받아쳤다.

갑자기 불붙은 말싸움은 홍 씨가 “지금은 내가 많이 져주잖아”라고 말하자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사소한 싸움이 앙금으로 오래 남아 있지 않고 금방 풀리는 것을 보니 ‘천생연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여친의 애교가 더해지면 이형준도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다. 이형준은 “콧소리도 내고 평소에 듣지 못한 목소리로 필요할 때마다 애교를 부리더라. 곰인 줄 알았는데 여우였다”라고 말했다.

둘은 선수와 캐디로도 환상적인 호흡을 자랑한다. 이형준의 캐디였던 아버지가 올해부터 어깨가 좋지 않아지면서 홍 씨가 자연스럽게 백을 메게 됐다. 이형준은 “동반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게 제일 중요한데 센스 있게 잘 했다. 그래서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또 그는 “같이 다니다 보니 퍼트 라인도 이제 잘 본다. 같이 상의하면서 하니까 점점 편해지고 있고 좋은 점도 많다”고 덧붙였다.

코스 공략과 클럽 선택의 조언도 중요하지만 캐디의 미덕은 무엇보다 긴장을 풀어주고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데 있다. 홍 씨는 “오빠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장난기 있는 말을 많이 하려고 한다”고 했다. 이형준은 “아무 말 없이 경기를 하면 조금 긴장도 되는데 잡담 같은 얘기들을 하다보면 자연히 풀리는 것들이 있다”고 넌지시 웃어 보였다.



홍 씨는 필드에서도 이형준을 밀고, 당기는 밀당의 고수다. 이형준은 “수빈이가 캐디를 몇 번 안 해봤을 때였던 것 같다. 파5에서 더블 보기를 했는데 수빈이가 갑자기 혼자 삐쳐서 가버렸다. ‘왜 그래’라고 물어보면 아무 말도 안하고 ‘나 삐쳤다’는 표정으로 그냥 막 갔다”고 설명했다. 이에 홍 씨는 “너무 맥 빠지게 그럴 이유가 없는 곳으로 공을 보내기에 집중하라고 그렇게 했다”며 이유를 말했다. 이형준은 “가끔 내가 캐디를 풀어줘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멘털이 강해지는 것 같다. 내가 못 쳐서 화나는 게 아니고 캐디가 화나서 캐디를 풀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털털하게 웃었다.

하지만 이런 홍 씨도 이형준이 지난 6월 KPGA선수권에서 1.5m 파 퍼트를 놓쳐 우승을 놓쳤을 때는 남자 친구를 따뜻하게 위로해줬다. 홍 씨는 “내 마음도 아팠지만 ‘오빠는 얼마나 더 아플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도 경기에서 1.5m 파 퍼트를 놓친 적이 없는데 마지막 홀에서 그걸 놓쳤다. 오빠가 더 힘들 것 같아서 ‘괜찮다’고 위로해줬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이형준은 “밀당을 잘 하는 것 같다. 나를 완전히 휘어잡고 있다. 나는 공이나 치고 돈 벌어오는 기계고, 조종을 당하고 있는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자 홍 씨는 “오빠를 잘 아니까 말로 휘어잡고 있는 것”이라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이형준과 홍 씨는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다. 바라보는 곳도, 목표도 같아졌다. 올 시즌 이형준은 다승을 목표로 잡고 있다. 2014년부터 매년 1승씩 통산 4승을 챙기고 있는 이형준은 올 시즌 2승 이상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다승을 하면 PGA투어 CJ컵과 각종 타이틀에도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국내에서 열리는 PGA투어에서 세계적인 선수들과 겨뤄 경쟁력을 확인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형준은 결혼을 한 뒤 일본 또는 미국 같은 해외 투어 진출을 희망하고 있다. 하반기에도 홍 씨가 캐디백을 맡아준다면 전반기처럼 둘은 환상의 하모니로 최고의 시즌을 완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형준은 “지금까지 너무 잘해줘서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정도로 기특하다. 지금처럼 내 옆에서 계속 힘이 돼줬으면 좋겠다”라며 여자 친구를 향해 사랑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미국의 스티브 스트리커는 최근 아내를 캐디로 고용해 함께 미국프로골프협회(PGA)투어 무대를 누비고 있다. 스트리커가 PGA투어 첫 승(1996 켐퍼 오픈)을 했을 때도 아내 니키가 캐디백을 멨다. 스트리커가 아내를 캐디로 고용한 이유는 함께 보내는 시간을 늘리기 위함이다. 함께 여행을 즐기면서 우승컵까지 겨냥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지금 이형준과 홍수빈이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스트리커 부부의 모습은 마치 이형준-홍수빈 커플의 미래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Talk +

Q : 하반기에도 여자 친구가 캐디를 하게 되나.
형준 : 몸 상태를 보고 결정할 예정이다.
Q : 가장 고가의 선물은.
형준 : 최근에 명품 가방을 사줬다.
수빈 : 오빠가 6월 13일이 생일이라 지갑을 사줬다.
Q : 우승할 때마다 선물을 받나.
수빈 : 좋은 성적을 거둘 때마다 하나씩 사준다.(웃음)
Q : 경기를 할 때 둘만의 스킨십이 있나.
수빈 : 내 뒷목을 잡는다. 그러면서 ‘최고의 그립감이군’이라며 장난을 친다.
Q : 캐디 피는 확실하게 챙겨주나.
형준 : 그러려고 노력하는데 수빈이가 자꾸 돈을 안 받으려고 한다. 그래서 선물 같은 걸로 대신하려고 한다.
수빈 : 오빠가 카드를 줘서 카드로 생활을 하고 있다. 행복하다.(웃음)
Q : 둘이 함께하면 어떤 부분이 가장 좋은가.
형준 : 캐디가 아니었을 때는 데이트도 잘 하지 못했다. 캐디를 하니까 전국을 누비며 그동안 못했던 추억들을 많이 쌓는 것 같다.
수빈 : 많은 곳을 돌아다니고 멋진 샷도 구경하는 등 함께 있어서 좋다.

◇이형준 profile
생년월일 : 1992년 6월 13일
신체조건 : 177cm, 70kg
소속 : JDX멀티스포츠
프로 데뷔 : 2010년
통산 승수 : 4승(2014 헤럴드 KYJ 투어 챔피언십, 2015 데상트코리아 먼싱웨어 매치플레이, 2016 카이도코리아 투어챔피언십, 2017 군산CC 전북오픈)
별명 : 가을 사나이
장기 : 퍼트
주요 이력 : 2016 카이도코리아 투어챔피언십 KPGA 72홀 최저타(262타), 최다 언더파(26언더파) 기록 작성, 2017 NS홈쇼핑 군산CC 전북오픈 19언더파 265타 대회 최저타 기록 경신

김두용 기자 enjoygolf@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