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프로 골퍼들 사이에서는 골프웨어도 또 하나의 장비로 인식되고 있다. 패션성은 물론 스윙을 방해하지 않는 편한 움직임, 가벼운 재질, 체온을 유지하는 데 필수인 통기성 등 골프웨어의 기능성이 일관성 있는 샷을 만드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된 지 오래다.

그러나 골프 문헌에 나타난 17세기의 골프웨어는 스타일도, 기능성도 아닌 스코틀랜드의 거센 바람과 추위를 막아주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골프를 처음 발견한 양치기들처럼 골퍼들은 각종 동물 가죽으로 된 옷이나 스코틀랜드 전통의 킬트를 입고 골프를 했다.

18세기에 유럽의 귀족들이 골프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골프 패션은 지금의 슈트 차림에 가까운 복장으로 바뀌었다. 바지는 영국에서 궁중복으로 사용됐던 무릎까지 내려오는 ‘니커즈’를 입었고, 상의는 와이셔츠와 넥타이 그리고 두꺼운 트위드 재킷을 입었다. 추위는 피할 수 있었을지 몰라도 스윙을 하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옷이었다.

▶ 20세기 초 골프 패션 간소화

골프의 유행이 미국으로 전해진 20세기 초반에는 상류층뿐 아니라 대중들도 골프를 취미로 삼게 됐다. 상류층 골퍼들은 다른 골퍼들과 구분되기 위해 코스 위에서 입는 옷에 더욱 신경 쓰기 시작했다.

당대의 세련된 골퍼들은 트위드 재킷을 대신해 영국 노퍽 공작의 사냥복에서 유래된 ‘노퍽 재킷’을 입었다. 구두는 크리켓 경기용으로 사용되던 투톤 ‘스펙 테이터’를 신으면서 신사의 품격을 드러내려 했다. 물론 더러는 ‘니커즈’가 아닌 지금의 면바지에 가까운 긴바지를 입기도 했다. 그래도 대다수 골퍼들은 ‘니커즈’ 패션을 포기하지 못하고 긴바지 위에 화려한 패턴의 니삭스를 신는 스타일이 보편적이었다.

1933년 US오픈은 골프 패션 역사에 혁명과도 같은 변화를 가져왔다. 당시에 미국은 폭염이 이어지고 있었다. 폭염 속에서 골프를 해야 하는 많은 선수들은 재킷과 니삭스를 벗어 던지고, 캐주얼하고 가벼운 복장으로 대회에 출전했다. 바비 존스, 진 사라젠, 월터 헤이건 등 최고의 골퍼들은 트위드 캡이나 페도라를 쓰고 넥타이를 맨 형식적인 복장을 고집했지만, 점차적으로 코스에서 두껍고 거북한 재킷은 보기 힘들어졌다. 편안한 복장을 추구하기 시작한 골퍼들은 넥타이도 내려놓기 시작했다. 직장이 끝나면 바로 코스로 가고 싶은 아마추어들에게 니삭스는 점점 더 의미가 없어졌다. 당대의 테니스 선수들 역시 골퍼들과 마찬가지로 와이셔츠를 입고 플레이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긴팔 셔츠가 불편하기 때문에 소매를 걷고 치는 선수들이 많았다. 결국 1926년 US오픈 테니스대회에 당시 세계 최고의 테니스 선수라고 불리던 르네 라코스테는 직접 개발한 반팔 폴로셔츠를 입고 출전했는데, 라코스테가 우승한 이후 테니스 선수들 사이에서 폴로셔츠에 대한 열풍이 불기 시작했었다.

골퍼들도 곧 이를 따라 폴로셔츠를 입게 되었고, 1950년대의 골프웨어는 반팔 셔츠, 면바지, 징이 박힌 골프화 등이 공식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1950년대는 과거 골프 패션의 기품과 대중적인 캐주얼 스타일이 접목되기 시작한 ‘골프 패션의 황금기’였다. 당시 최고의 골퍼였던 ‘필드 위의 신사’ 벤 호건은 아이비 캡과 깔끔한 흰색 폴로셔츠로 절제된 모습을 보여줬고, 거친 스윙과 카리스마의 아놀드 파머는 탄탄한 몸매를 자랑하는 딱 붙는 셔츠와 면바지로 젊고 세련된 스타일을 선보였다.

▶ 1970년대 이후 개성 드러내는 패션 유행


사진설명 (왼쪽) ‘필드 위의 신사’ 벤 호건, 잭 니클라우스(오른쪽)와 톰 왓슨도 화려한 패션으로 스타일을 바꿨다.

1960년대에 히피 문화가 등장한 이후 1970년대는 이전과는 완전히 색다른 트렌드가 코스에 퍼졌다. 라코스테 회사를 설립해 폴로셔츠를 판매하던 르네 라코스테는 1951년에 다양한 컬러의 셔츠를 팔기 시작했고, 골퍼들의 복장도 흰색 셔츠, 카키색 바지에서 벗어나 점점 과감해졌다. 핑크색, 보라색, 빨간색 등 화려한 색깔의 셔츠도 코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면 소재 대신 폴리에스터, 나일론같이 자유자재로 패턴을 프린트할 수 있는 원단이 대유행했고, 바지, 셔츠, 양말을 포함해 모든 골프웨어가 체크무늬나 패턴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잭 니클라우스나 톰 왓슨 같은 보수적인 골퍼들도 원색 바지를 입기 시작했고, 화려한 의상의 골퍼들이 출현하면서 골프 코스는 데이비드 보위 콘서트나 디스코 장 못지않게 화려한 무대로 인식됐다.
무엇보다 한 가지 톤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위 말하는 ‘깔 맞춤’ 하는 것이 대유행이었다. 물론 지금 보면 이해하기 힘들 만큼 촌스러운 스타일도 많았고, 당시 골프웨어를 웃음거리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1970년대에 메이저 대회에서 두 차례 우승한 조니 밀러는 “1972년에 밝고 세련된 옷을 입기 시작하고 나서부터 갑자기 대회에서 계속 우승했다. 남들한테 ‘이제야 제대로 골프를 할 준비가 됐다’라는 신호였다”며 “어떤 선수들에겐 흑역사로 남아 있을 패션이 나에게는 더 많은 우승을 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 타이거 우즈 등장 이후 골프 패션 대중화



사진설명 우즈의 야구 모자와 폴로셔츠는 골프웨어 패션의 새로운 공식이 됐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의 등장은 골프웨어 역사에 있어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사건이었다. 우즈가 1997년 메이저 대회인 마스터스에서 12타 차로 우승하면서 포효할 때 그는 빨간색 목 폴라 셔츠와 검은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빨간색 셔츠와 검은색 바지의 조합은 지금의 감각으로 보면 그리 세련돼 보이지 않았지만, 우즈의 실력이 워낙 출중했기 때문에 골프계 전반에 그 파급 효과는 대단했다. 우즈에 대한 관심은 텔레비전 중계들의 역대급 시청률에서 드러났고, 우즈의 야구 모자와 폴로셔츠 패션은 곧 골프 패션의 새로운 공식이 됐다. 골프 클럽이나 볼보다도 먼저 보게 되는 모자, 골프화, 폴로셔츠에 특정 브랜드의 로고를 노출시키는 패션이 일반화되기 시작했고, 유명 스포츠 회사들은 유명 선수들과 거액의 스폰서십 계약을 맺으면서 자사의 옷을 입히기 위해 혈안이 됐다. 그리고 골프웨어 회사들은 누구나 편안하게 소화할 수 있는 옷들을 대량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전통을 여전히 중시하는 골프에서 가볍고, 편안한 골프웨어가 자리매김한 것은 골프가 더 이상 귀족의 전유물이 아닌 하나의 스포츠로서 완전히 자리매김하게 된 데 따른 것이 아닐까. 천문학적인 상금과 스폰서십이 오가는 골프 투어에서 골프 패션의 전통이 점점 자리를 잃고 있는 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시연 기자 siyeonlee121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