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남녀 골프의 시즌 첫 메이저 대회가 열리는 달이다. 올해 4월 탄생한 2018년 남녀 첫 메이저 챔피언은 이색적인 공통점이 있다. 썩 유쾌한 공통점은 아니다. 이들 모두 팬들의 환호와 반가움을 끌어내기보다 ‘나쁜 선수’, ‘비호감’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는 사실이다.

올해 미국프로골프협회(PGA)투어의 시즌 첫 메이저인 마스터스는 패트릭 리드의 우승으로 끝났다. 미국의 <스포르팅 뉴스>는 그린 재킷의 주인공이 된 리드를 가리켜 “역대 마스터스 우승자 중 가장 인기 없는 선수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라고 평했다. 대회 마지막 날 리드가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와 우승 경쟁을 벌였는데, 오거스타에 모인 갤러리들이 자국 선수인 리드가 아니라 유럽 출신인 매킬로이를 응원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영국의 <텔레그래프>는 “리드는 미국 홈팬들의 안티 히어로”라고 썼다.

▶미국의 ‘국민 밉상’ 리드

리드는 15세였던 2005년부터 3년 연속으로 미국 최고의 아마추어 선수로 뽑혔을 만큼 어릴 때부터 실력이 뛰어났다. 그러나 2008년 조지아대학에 골프 특기생으로 입학한 후 스캔들이 더 많았다. 이때 미성년자 알코올 소지죄로 골프팀에서 쫓겨났다.



그는 동료들의 물건을 훔치거나 속칭 ‘알까기(공이 떨어진 위치가 아닌 다른 유리한 위치에 공을 옮기는 것을 뜻함)’를 하는 것으로도 악명이 높았다. 이후 리드는 마스터스가 열리는 오거스타 골프클럽 가까이에 위치한 오거스타 주립대학으로 옮겨 이곳을 졸업했다. 리드는 오거스타 주립대학을 2년간 우승시키는 데 큰 몫을 해냈다. 그러나 오거스타 주립대학의 팀 동료들은 리드를 매우 싫어했다고 한다.

이후 리드는 아내와의 결혼을 부모가 심하게 반대하자 부모와 연을 끊었다. 이후 아들과 화해하고 싶어했던 부모가 2014년 US오픈 대회장을 찾았다. 그러나 리드가 경찰을 불러 쫓아냈다. 가족을 중시하는 미국 문화에서 이러한 리드의 행동은 팬들의 반감을 크게 샀다.

이번 마스터스 우승 직후에도 공식 인터뷰에서 “부모님과 함께 우승의 기쁨을 나누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이에 리드는 딱 잘라서 “나는 이곳에 우승하러 왔을 뿐”이라고 답했다.

여전히 부모와 화해할 마음이 없어 보인다. 팬들 못지않게 미국의 미디어도 리드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다. 마스터스 우승 후 공식 인터뷰에서 한 기자는 노골적으로 “팬들이 왜 당신을 싫어한다고 생각하느냐”고 질문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나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트위터에서 하는 이야기에는 관심 없다”고 답했다.

사실 미국 팬들의 트위터 반응은 훨씬 격하다. 팬들은 리드에 대해 “마스터스 우승자 중 가장 나쁜 놈”이라고 했다. 마스터스 우승 후 리드는 그린 재킷을 입고 메이저리그 경기와 NBA 경기장에 나타났다. 이런 장면을 본 팬들은 트위터에 “우승 후에 한 번이라도 그린 재킷을 벗긴 한 건가? 언제까지 입을 거지?”라며 비아냥거렸다.

미국의 는 마스터스가 끝나기도 전에 “왜 골프팬들은 패트릭 리드를 싫어하나?”라는 기사를 썼다. 위에 소개한 그의 사생활에서 나온 잡음들, 여기에 리드가 세계 랭킹 20위에 불과했던 2014년에 PGA투어 3승을 거뒀다는 이유로 “나는 세계 톱5 안에 드는 선수다. 타이거 우즈와 견줄 만하다”고 했던 발언이 ‘비호감’ 이미지를 주는 데 결정적이었다고 소개했다. 이 매체는 “리드가 20대 초반에 3승을 올린 건 대단한 성과였지만, 그는 당시 메이저 우승이 없었다. 마치 NBA의 애송이 루키가 플레이오프에 한 번도 올라가지 못한 상태에서 ‘나는 르브론 제임스, 스테판 커리와 동급이다’라고 선언한 격이다”라고 평했다.

한 가지 아이러니는 리드가 미국 국가대표로서는 뛰어난 성과를 보여줬다는 점이다. 그는 2016년 라이더컵에서 로리 매킬로이와 명승부를 펼친 끝에 승리해 미국의 우승에 결정적인 힘을 보탰다. 이 때문에 ‘캡틴 아메리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리드는 2015년 PGA투어 선수들이 뽑은 ‘가장 싫어하는 선수’에서 버바 왓슨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슬로 더티 플레이어’ 린드베리

2018년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투어 첫 메이저인 ANA 인스퍼레이션은 페르닐라 린드베리에게 돌아갔다. 스웨덴에서 태어난 32세의 린드베리는 LPGA투어 첫 우승을 메이저에서 거머쥐었다. 그것도 박인비와 8차 연장까지 가는 혈투를 벌인 끝에 말이다.

해가 지는 바람에 월요일에 속개된 연장전은 치열했다. 8번의 연장과 메이저 신데렐라, 그러나 이처럼 극적인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경기를 지켜본 한국 팬들은 우승자를 축하하기보다는 분통을 터뜨렸다. 린드베리의 비매너 때문이다. 린드베리는 우승 후 “똑같은 루틴을 유지하면서 평정심을 유지한 게 우승 비결이다”라고 말했는데, 그녀가 말한 루틴이란 건 누가 봐도 속이 터졌던 슬로 플레이를 가리킨다.

린드베리는 연장 내내 퍼트를 앞두고 재고 또 쟀다. 한 번 라이를 보고, 이번에 치는가 하면 빈 스윙을 좀 하다가 다시 앉아서 타깃을 봤다. 이번에는 진짜 쳐야지, 할 때 또 고개를 들고 홀을 노려보는 일이 반복됐다. 한마디로 슬로 플레이의 끝판왕이었다. 오죽했으면 JTBC골프 해설을 맡은 한희원 프로가 “린드베리의 샷 루틴이 갈수록 길어진다”고 한숨을 내쉴 정도였다.

린드베리의 슬로 플레이에 대회 도중 평정심을 잃은 한국 선수가 또 있었다. 3라운드에서 동반 플레이를 했던 박성현이다. 3라운드를 선두로 출발했던 박성현의 조는 슬로 플레이로 구두 경고를 받았다. 이후 박성현의 샷이 급격히 무너져 5타를 잃었고, 순위가 미끄러졌다.

돌부처 같은 박인비지만 린드베리의 슬로 플레이에 영향을 전혀 안 받았을 리 없다. 영국왕립골프협회(R&A)의 ‘페이스 오브 플레이’ 룰은 샷당 40초의 시간제한을 권장한다. 첫 샷을 하는 선수의 경우는 50초까지 허용한다. 린드베리는 ANA 인스퍼레이션 연장전에서 티샷이나 세컨드 샷을 할 때는 최소 1분을 썼고, 퍼팅을 할 때는 그보다 더 길게 시간을 끌었다. 마지막 8차 연장에서 린드베리가 챔피언 퍼팅을 하기까지는 약 2분이 걸렸다. 그러나 골프 규정상 샷의 시간 제한은 앞 조와 4스트로크 이상 벌어져 있을 때 적용되기 때문에 연장전의 경우 적용하지 않아도 문제가 없다는 해석이다. 린드베리는 단순히 슬로 플레이만으로 동반자의 속을 긁은 게 아니었다. 동반자가 티샷을 하면, 완전히 자리를 정리하기도 전에 티 박스로 밀고 들어와서 밀쳐내는 듯한 행동을 하며 묘하게 신경을 건드렸다.

린드베리는 LPGA투어 250개 대회 만에 우승했고, 게다가 8차 연장, 또한 상대는 ‘여제’ 박인비였다. 외신은 드라마에 감탄했지만, 이래저래 한국 팬들에게는 뒷맛이 개운치 않은 결과였다.

박인비는 “8차 연장 끝에 우승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린드베리가 해냈다. 축하한다”고 말했다. 리드와 린드베리는 극적인 메이저 첫 우승을 해내고도 좋은 이미지를 남기지는 못했다. 그러나 는 리드에 대해 이렇게 전했다. “다 큰 성인 선수를 대학 때의 철없던 에피소드로 평가하지는 말자.”

앞으로 이들이 투어에서 뛸 시간은 더 남아 있다. 결국은 진짜 실력이, 진짜 속마음과 인성이 시간을 두고 차차 드러날 수밖에 없다. 만일 한때 반짝 빛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논란의 선수라면, 혹은 시간이 갈수록 인성이나 비매너 플레이 때문에 연신 잡음만 새어나온다면 먼 훗날 ‘흠, 그저 그런 그 정도 수준의 선수였군’ 하고 웃어넘기면 그만이다. 그 반대라면 ‘그때 잘못 봐서 미안했습니다’ 할지도 모른다.

이은경 기자 eunkyonglee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