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에 한 발 더 다가선 ‘제1의 노예림’

입력 : 2018-11-27 수정 : 2018-11-27 오전 11:30:00서창우 기자

영락없는 17세 소녀였다. 사슴같은 눈망울을 반짝이며 한국 드라마와 예능 그리고 K-팝(POP)을 줄줄이 꿸 때까지는 그랬다. 그러다 대화 주제가 ‘골프’로 바뀌면 소녀의 이미지는 사라졌다. 귀여운 마스크에 감춰진, 세계 최고가 되기 위한 열정과 욕망. 재미동포 노예림의 진면목은 여기에 있다. [사진 신중혁]

노예림은 지난 10월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다. 국내 유일의 미국 여자프로골프협회(LPGA)투어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이 그 무대였다. 대회에 참가한 선수 78명 가운데 유일한 아마추어였기 때문. 그는 지난 4월에 열린 박세리 주니어 챔피언십에서 정상에 올라 이 대회 출전권을 따냈다. 모델을 연상케 하는 늘씬한 외모도 한몫했다.

성적은 아쉬움 투성이였다. 대회 첫날부터 지나친 긴장감에 짓눌려 장점으로 꼽았던 드라이브샷과 아이언 샷이 말을 듣지 않았다. 페어웨이와 그린을 각각 10번 이상 놓쳤다. 노예림은 “첫 홀에 들어갈 때부터 많이 떨렸다”며 “주니어 대회와 달리 프로와 경쟁하다 보니까 아무래도 긴장을 많이 했다”고 털어놓았다. 안방같았던 주니어 대회와 달리 프로 무대가 안겨주는 중압감을 이겨내기 쉽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노예림은 최종합계 6오버파로 공동 59위에 머물렀다.

그렇지만 노예림은 절망 대신 희망을 봤다. 기죽기는커녕 오히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친구들이 프로 대회에 나가서 실력을 보여주고 있는 만큼 나도 자신있다”며 “지금까지 프로들과 겨룰 기회가 많지 않았다. 경험만 쌓이면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소녀가 감춰놓은 무기 ‘집념’

노예림은 7세 때 미국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에서 일식당을 운영하는 아버지 노성문 씨와 함께 골프채를 처음 잡았다. 그 이후 친척들과 골프장을 놀이터삼아 다니다 골프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9세 무렵부터는 본격적으로 크고 작은 대회에 발들이며 실력을 뽐냈다. 노예림은 “어린 시절 골프에 소질이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며 싱긋 웃었다.

그는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지난해부터 꽃 피운 기량은 올해 들어 만개했다. 박세리 주니어 챔피언십 우승은 시작에 불과했다. 바로 그 다음 대회에서 준우승을 기록한 뒤 캘리포니아 주니어 챔피언십부터 캐나다 여자아마추어 챔피언십까지 4개 대회에서 연속으로 우승컵을 들어 올린 것이다. 미국 주니어 랭킹 1위 자리도 자연스럽게 뒤따라왔다. 그는 “오랫동안 2등을 했는데 최근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서 처음으로 랭킹 1위에 올랐다. 너무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아마추어 세계랭킹도 석 달 만에 100계단 가량 뛰어오르며 22위가 됐다. 지난 9월에는 미국을 대표해 프랑스 파리 디즈니랜드에서 벌어진 주니어 라이더컵에도 출전했다.

노예림은 우승했던 매 순간을 또렷이 떠올렸다. 어느 우승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 중에서도 노예림은 ‘인생 우승’으로 캐나다 여자아마추어 챔피언십을 꼽았다. 그는 “아마추어 세계랭킹 1위까지 총출동한데다 직전 대회에서 기상 악화로 다섯 시간 이상 기다리며 평소보다 더 많은 홀을 치렀다.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고 피곤해서 ‘톱10’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정상에 올랐다. 기분이 최고였다”고 말했다.

LPGA투어 캐나다 여자오픈 출전권이라는 덤도 얻었다. 쟁쟁한 프로 선배들과 경쟁에서 위축되지 않았다. 지난해 미국-유럽 여자 프로골프 대항전인 솔하임컵에 나란히 출전했던 크리스티 커, 캐롤라인 마손 등과 함께 4언더파를 쳐 46등을 했다. 아마추어 골퍼 중에는 유일하게 커트를 통과하면서 가장 좋은 성적을 낸 아마추어 골퍼에게 주어지는 ‘로(low) 아마추어’도 수상했다.

재능은 노력을 곁들여야 비로소 날개를 달 수 있는 법. 노예림도 강력한 무기로 ‘집념’을 내세웠다. 그는 “평소에 연습을 안 하면 스윙을 잊어먹을 것 같아 더욱 열심히 한다. 최근에는 즐겨 만나던 친구들과 만남도 줄이면서 연습에 매진한다”며 “예전에는 경기에 출전하면 즐긴다는 생각으로 임했는데 요즘은 우승하러 간다는 마음가짐으로 나간다”며 눈을 번뜩였다. 자신의 장점을 꼽아달라는 질문에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승부욕’이라고 답했다. 명랑하고 쾌활한 모습 뒤에 감춰진 승부사의 기질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제2의 미셸 위? 제1의 노예림!

노예림은 170cm를 훌쩍 넘는 큰 키를 자랑한다. 여기에 시원시원한 이목구비와 살짝 그을린 피부색이 오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특유의 동양적인 느낌을 풍긴다. 마치 10년 전 미셸 위의 모습을 보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노예림은 “키가 크고 스타일이 비슷해서 그런 것 같다. 최근 캐나다 여자오픈에 출전했을 때도 한국 사람들이 미셸 위랑 닮았다는 얘기를 많이 하는 걸 들었다”고 했다.
둘은 장타자라는 공통분모도 갖고 있다. 미셸 위는 드라이버로 270야드를 어렵지 않게 보낸다. 지난 2004년엔 14세 나이에 미국프로골프협회(PGA)투어 소니오픈에서 성대결도 펼쳤다. 비록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남자 골퍼에 버금가는 대포알 같은 드라이브 샷을 자랑하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노예림도 비슷한 거리를 낸다. 방향성도 좋아 공을 페어웨이든 그린이든 어렵지 않게 올려놓을 정도로 긴 클럽을 다루는 데 능숙하다. 그 반면 오랫동안 퍼트 입스에서 헤맸던 미셸 위처럼 퍼트가 약점이다. 강점은 물론 약점도 데칼코마니처럼 닮은꼴이다.

그는 “미셸 위가 인기가 많기 때문에 비슷하다는 소리를 들으면 당연히 기분이 좋다”고 활짝 웃었다. 그러나 이내 입술을 굳게 깨물며 “제2의 누군가가 아닌 제1의 노예림이 되고 싶다”고 당차게 말했다.

노예림은 인터뷰 내내 자기 생각을 과감 없이 드러냈다. 에둘러가는 법이 없었다. 진로 선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지난 6월 말 ‘명문’ UCLA(캘리포니아대학교 LA캠퍼스) 입학을 포기하고 일찌감치 프로 무대를 밟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주위의 만류에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최근 4개 대회 연속 우승에서 엿볼 수 있듯 실력이 뒷받침되다 보니 설득력이 생겼다. 단순한 고집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는 “세계 톱랭커인 렉시 톰슨과 코다 자매 등도 대학 진학 대신 프로 데뷔를 선택했다”며 “어차피 대학 졸업하고 나서 프로로 갈 텐데 미리 도전하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훈련 방식도 그런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노예림은 단체 훈련보다 개인 훈련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노예림은 “골프는 개인 종목인데 대학에 들어가면 팀 안에서 활동해야 한다. 이런 시스템은 나와 맞지 않다”며 “단체 훈련보다 개별적으로 연습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내년 가을 LPGA 퀄리파잉토너먼트(Q 스쿨)에 응시할 계획이다.

한국 예능 출연을 꿈꾸다

골프를 대하는 자세에는 어른스러움이 묻어났지만 K-팝과 한국 드라마·예능을 얘기할 땐 영락없는 10대 소녀로 돌아왔다. 인기 가수와 배우를 구구단 외우듯 줄줄이 뀄다. 이상형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소지섭”이라고 답했다가 “송중기와 이민호도 좋다”면서 “이상형은 드라마를 볼 때마다 바뀌는 것 같다”고 배시시 웃었다. 한류 열풍의 주역으로 꼽히는 남자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 소속의 전정국도 노예림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있다.

사실 노예림에게 한국은 가깝고도 먼 나라였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탓에 한국 문화에 익숙지 않다. 그는 “어차피 밖에서 영어를 사용해야 하니까 조금 불편하더라도 한국말보다 영어로 생활하려고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다 1년 전부터 한국 드라마를 접하면서 이같은 생각은 180도 바뀌었다. 노예림은 “지난해 10월 <닥터스>와 <시크릿 가든>을 정말 재미있게 봤다. 그 이후 국내 드라마를 챙겨보기 시작했다. 이제는 휴대폰 기종까지 한국 브랜드로 바꿨고 부모님과 문자를 보낼 때에도 한글을 쓴다”며 고국에 대한 애정을 듬뿍 드러냈다.
노예림의 프로 데뷔 무대는 미국LPGA투어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노예림은 기회가 된다면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투어에서도 뛰고 싶어 한다. 이 또한 한국 문화의 영향이 컸다. 그는 “한국에 6년 만에 왔는데 너무 편안하고 좋다. 한국 음식도 맛있다.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한국 무대에서도 뛰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고 털어놓았다.

‘세계랭킹 1위’. 노예림이 그리는 10년 뒤 그의 모습이다. 주니어 무대를 평정한 ‘예비 프로’의 당찬 포부다. 그는 “퍼트가 약점이긴 하지만 크게 부족한 부분은 없는 듯하다. 열심히 노력하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목표만큼 간절한 꿈이 하나 더 있다. “요즘 즐겨보고 있는 인기 예능프로그램인 <런닝맨>에 꼭 출연하고 싶어요. 그러려면 골프를 더 잘 해야겠죠?” 한류에 흠뻑 빠진 10대 소녀의 감출 수 없는 순수함에 주위는 금세 환하게 빛났다.

서창우 기자

노예림 PROFIL
생년월일 2001년 7월26일
신장 175cm
장기 롱게임
취미 한국 예능·드라마 감상
롤모델 타이거 우즈
주요 경력 2018년 박세리 챔피언십 우승,
US걸스 주니어 챔피언십 우승,
캐나다 여자아마추어 챔피언십 우승,
미국 주니어골프협회(AJGA) 랭킹 1위
미LPGA투어 캐나다 여자오픈 공동 46위(로 아마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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