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미국프로골프협회(PGA)투어에 진출한 루키 가운데 주목할 만한 선수 랭킹 1위’ ‘PGA투어에서 성공할 수 있는 유력한 후보’

PGA투어 홈페이지에서 임성재(20)를 지칭해 이렇게 설명할 때만 해도 예측이 맞아떨어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즌 초마다 하는 예측인데다, 지난 시즌 성적을 바탕으로 평가를 하기 때문에 으레 그러려니 했다.

그런 반신반의는 시즌 개막전(세이프웨이오픈, 10월4∼7일)을 마친 후, 아니 개막전 첫 라운드 이후 싹 가셨다. 그는 첫날부터 보란듯이 선두권에 나섰고, 최종라운드에서는 ‘베테랑’과 함께 챔피언조에서 플레이했는데도 주눅들지 않고 있는 자신의 이름을 각인했다. 결국 그는 나흘내내 언더파를 친 끝에 합계 13언더파 275타(66·69·69·71)로 공동 4위를 차지했다.

임성재라는 이름은 국내에서 잘 알려진 편이 아니었다. 주니어시절 그보다 세 살 많은 김시우와 우승경쟁을 벌이고, 국가상비군·국가대표를 거쳤는데도 그렇다. 열 일곱살 고교생 신분이던 2015년 프로가 됐지만 그 이듬해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코리안투어에서 잠깐 활약했고 2017년까지 일본 무대에 더 주력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퀄리파잉토너먼트(Q스쿨)를 거쳐 일본 무대로 간 그는 고교 3학년이던 2016년 일본프로골프투어(JGTO) 던롭 스릭슨 후쿠시마오픈 첫날 선두에 나서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임성재는 2017년 JGTO에서 ‘톱10‘에 여덟 차례나 들며 그 해 신인왕을 차지했다. 그는 JGTO 상금랭킹 12위의 성적표를 뒤로한 채 그 해 말 미국PGA 웹닷컴(2부)투어 Q스쿨에 응시, 수석 합격했다.

거기까지는 어느정도 운이 따랐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낭중지추라고 했던가. 그의 실력은 곧 드러났다. 2018년 1월 치른 웹닷컴투어 데뷔전(바하마클래식)에서 ‘덥석’ 우승컵을 안았다. 그리고, 그 이후 웹닷컴투어 홈페이지의 초기화면에서는 ‘Im’(그를 지칭하는 이니셜)이 그의 사진과 함께 거의 빠지지 않았다. 2018년 웹닷컴투어는 ‘임성재의 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였다. 개막전 우승으로 상금랭킹 1위에 오른 그는 시즌 내내 단 한 번도 그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지난 8월 치러진 정규시즌 마지막 대회(포틀랜드오픈)에서 시즌 2승째를 거두며 2위를 멀찌감치 따돌리고 투어 상금랭킹 1위(55만3800달러)를 차지했다. 한국선수가 웹닷컴투어에서 상금왕이 된 것은 임성재가 처음이다.

임성재는 그 덕분에 ‘꿈의 무대’인 PGA투어에 입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고대하던 데뷔전에서 공동 4위를 하며 주위를 놀랬다. 연장승부를 벌인 세 명(브랜트 스데네커, 라이언 무어, 케빈 트웨이)에게 단 1타 뒤져 연장에 합류하지 못했으나 빅 무대에서 그의 이름을 각인하기에 충분한 성적이었다. 한국 선수가 미국PGA투어 데뷔 대회에서 ‘톱5’에 든 것도 그가 처음이다.

임성재는 그 다음 주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CIMB클래식은 건너뛰었고 고향 제주에서 열린 CJ컵에 처음 출전했다. 임성재는 제주에서 태어났고, 지금도 제주에 집이 있다. CJ컵이 열리는 나인브릿지GC에서 연습을 해오며 자랐기 때문에 여느 선수보다 코스와 바람에 익숙하다. 임성재는 개막전 후 “올해 남은 5∼6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 내년에는 편하게 경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임성재는 기량면에서도 크게 흠잡을 데 없다. 드라이버샷을 평균 300야드 날리면서도 더 자신있는 것은 아이언샷과 웨지샷이다. 버디와 파를 가름하는 아이언을 잘 다룬다는 것은 그만큼 ‘버디 밑천’이 탄탄하다는 얘기다. 그는 웹닷컴투어에서 라운드 당 평균 4∼5개의 버디를 기록했다. 이 부문 랭킹 5위였다. 세이프웨이오픈에서는 라운드 당 5개 이상의 버디를 잡았다. 몰아치기를 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준 셈이다. 톱에서 잠깐 멈춘 다음 다운스윙에 들어가는 그의 스윙폼은 마쓰야마 히데키(일본)를 연상시킨다.

임성재와 함께 주니어 시절을 보낸 이정 프로의 아버지 이승우씨(경기도골프협회 경기위원)는 “성재보다 볼을 똑바로 치는 선수를 보지 못했다. 다른 선수들은 드라이버샷의 좌우 편차가 20∼30m 나는 게 보통인데 성재는 볼이 목표에서 벗어나도 고작 1∼2m다. 깜짝 놀랄만큼 볼을 똑바로 친다. 테이크어웨이 때 아웃사이드로 갔다가 다운스윙 때 인사이드로 들어오는 스윙, 약간 느린 스윙 템포 덕분인지 드라이버샷을 멀리 보내면서도 정확성까지 갖춘 선수다”고 혀를 내둘렀다. ‘20세기 최고의 골퍼’ 잭 니클로스는 “골프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드로도 아니고 페이드도 아닌, 바로 볼을 똑바로 치는 능력”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임성재는 그만한 잠재력을 갖췄다.

임성재를 매니지먼트하는 플레이앤웍스의 김두식 대표도 “임 선수를 국가대표 시절부터 눈여겨봐왔는데 기복없이 꾸준히 치는 것이 장점이다. 그러다 보니 잘 되는 날에는 몰아치기에도 능하다. 그 무엇보다 한 눈 팔지 않고 성실하게, 침착하게 임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세이프웨이오픈 최종일 챔피언조에서 플레이하면서도 언더파 스코어를 내며 우승경쟁 대열에서 멀어지지 않은 것도 그의 침착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임성재는 한국 음식 말고도 피자·햄버거·파스타를 좋아한다. 미국 투어 생활을 하는데 적어도 먹을거리에서만큼은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지금은 부모가 그를 따라다니며 보살핀다. 아직 미국에 거점을 정하지 못하고 ‘노마드’ 생활을 하고 있으나, 다음 시즌 투어카드가 가시권에 들어오면 집을 마련할 계획이다.

임성재는 ‘4번 볼’을 안 쓴다. ‘죽을 사’(死)가 연상되기 때문이다. 젊은 선수 치고는 뜻밖의 징크스다. 현재 임성재의 세계랭킹은 91위다. 한국선수로는 안병훈(47위) 김시우(57위) 다음으로 높다. 이번 시즌 미국PGA 투어카드와 함께 ‘제5의 메이저대회’로 부르는 플레이어스챔피언십 출전 자격을 얻은 그의 데뷔연도 첫째 목표는 투어카드 유지다. 2018-2019시즌에 상금랭킹 125위안에 들어 다음 시즌에도 시드 걱정없이 미국 정규투어에서 활약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초반 기세를 이어나가야 한다. 여기에 세계랭킹 50위안에 들어 첫 메이저대회인 마스터스 출전권을 얻는다면 그것은 덤이다.

2018~2019 시즌 미국PGA투어에서는 임성재 외에도 안병훈, 김시우, 김민휘, 강성훈, 배상문, 최경주, 이경훈 등 8명의 한국선수가 뛴다. 임성재는 그 중 막내이지만 김시우 배상문과 더불어 ‘한국선수 트로이카’를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김시우(23)와 배상문(32)은 투어에서 이미 2승씩을 거둔 선수들이다. 임성재가 두 선배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지 여부는 CJ컵이 가늠자가 될 듯하다. 개막전에서 ‘될성부른 떡잎’임을 증명한 임성재가 투어 신인왕을 거머쥐면서 한국의 간판 남자골퍼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이번 시즌 미국PGA투어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김경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