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GA의 어제④]해외 진출 러시

입력 : 2019-01-07 수정 : 2019-01-07 오후 3:53:00이지연 기자

한국인 최초로 미국프로골프협회(PGA)투어에 데뷔한 최경주.[KPGA]

숨가쁘게 질적·양적 성장을 거듭한 한국 프로 골프는 골퍼들의 해외 진출이라는 도전에 직면한다. 한국 프로 골퍼의 해외 진출의 역사와 유전자는 사실 1호 프로 골퍼 연덕춘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덕춘은 본격적인 골프 수업을 일본에 건너가서 받았고 일본오픈 제패로 이름을 알렸다. 연덕춘의 제자 한장상 역시 일본 무대에서 활약했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 프로 대회가 없으니 당연한 행보였다.

프로 초창기 해외 진출

1950년대에 KPGA선수권대회와 한국오픈 골프선수권대회가 시작되면서 한국에도 프로 골프 대회가 태동했지만, 프로 골퍼의 해외 무대 도전은 이어졌다. 태동기의 국내보다는 아무래도 해외가 사정이 나았기 때문이다.

초창기 해외 진출은 일본과 필리핀 홍콩 등 가까운 아시아 지역에 한정됐다. 김승학, 최윤수, 최상호, 임진한, 김영일 등은 국내 대회 못지않게 아시아 지역 대회에 자주 출전했다. 그러나 태동기를 지나 황금기를 맞은 한국 프로 골프에 불어닥친 해외 진출 추세는 종전과 양상이 달랐다. 국내에서 활동하면서 잠깐씩 해외 대회를 다녀오는 방식이 아니라 아예 주 무대를 해외로 옮기는 선수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상 본격적인 해외 진출 1호는 김종덕이었다. 1985년 프로가 된 김종덕은 1989년 쾌남오픈에서 생애 첫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정상급 선수로 이름을 알렸다. 그리고 그 이듬해인 1990년부터 아시안투어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더니 1997년 아시안투어와 일본투어를 겸한 기린오픈을 제패하면서 일본 무대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김종덕의 우승은 연덕춘-한장상-임진한에 이어 한국인 네 번째 우승이었다.

일본프로골프투어는 대회수나 상금에서 한국과 비교가 되지 않는, 당시로는 ‘꿈의 무대’였다. 김종덕은 일본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일본을 주무대로 삼았다. 김종덕은 1999년에 시즈오카오픈과 요미우리오픈 정상에 오르며 성공적으로 일본 무대에 정착했다. 그는 마흔 세 살이던 2004년 니가타오픈에서 일본 투어 네 번째 우승을 거뒀다.


강욱순은 아시안투어에서 두 차례나 상금왕에 올랐다.

1990년에에 해외 투어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선수는 강욱순이었다. 1989년 투어에 입회한 뒤 1995년에 일간스포츠오픈에서 첫 우승을 한 강욱순은 첫 승과 동시에 시선을 아시안투어로 돌렸다. 다른 선수들이 국내에서 열리는 아시안투어에 참가하는 것이 고작이었던 시대에 강욱순은 적극적으로 아시아 무대를 공략해 성공한 케이스였다. 1996년 한국인 최초로 아시안투어 상금왕에 오른 강욱순은 1998년에도 상금왕을 차지했다. 강욱순은 37세 때인 2003년 미국프로골프협회(Q)스쿨에 도전했다. 비록 마지막 홀 30cm 퍼트를 놓치면서 1타 차이로 투어 카드 획득에 실패했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투어를 갈망했던 도전자였다.

강욱순과 김종덕 등이 해외 투어에서 성공을 거두자 해외 진출을 모색하는 프로가 크게 늘어났다. 특히 일본으로 눈을 돌리는 프로 골퍼가 많았다. 한국 프로 골퍼로 해외에 진출해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최경주 역시 김종덕의 영향을 받아 대한해협을 건너면서 세계 정복의 길을 걷게 됐다.

최경주와 양용은의 PGA투어 성공

1997년 한국 프로 골프 상금왕 2연패를 달성한 최경주는 곧장 일본으로 눈을 돌렸다. 1998년 IMF 외환 위기 여파로 국내 대회 수가 7개까지 줄자 최경주는 일본, 미국 등 해외 투어의 문을 두드렸다. 1998년 11월 PGA투어 퀄리파잉 스쿨에서 떨어진 그는 일본으로 진출해 1999년 일본프로골프투어에서 2승(기린오픈·우베고산오픈)을 거뒀다. 더 큰 무대로 나아가라는 주변의 권유를 받은 최경주는 1999년에 PGA투어 Q스쿨에 다시 도전했고 35위에 오르면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PGA투어 멤버가 됐다.

최경주는 루키 시즌인 2000년에는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상금랭킹 134위에 그쳤다. 세계 최고의 골퍼들이 모인 PGA투어의 벽은 너무 높았다. 투어 카드를 잃어버린 그는 2000년 12월 또 한번 퀄리파잉 스쿨을 통과해 PGA투어에 재입성했다. 혹독한 루키 시즌을 보낸 뒤 재수 끝에 복귀한 2001년에는 상금랭킹 65위로 PGA투어에 연착륙했다.


컴팩클래식 우승 뒤 부인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은 최경주.

최경주는 데뷔 3년째인 2002년 PGA투어 컴팩클래식에서 우승하는 쾌거를 이뤘다. 한국인이 PGA투어 대회를 제패한 건 그가 처음이었다. 아시아인으로도 일본의 이사오 아오키, 마루야먀 시게키에 이어 세 번째다. 최경주는 9월 탬파베이클래식에서 또 한번 정상에 올라 첫 우승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입증했다.
최경주는 2003년 린데 저먼 마스터스에서 한국인으로 처음 유러피언투어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미국과 유럽, 일본, 한국 등 4대 투어를 최초로 석권한 선수로 발자취를 남겼다. 그리고는 2005년 크라이슬러 클래식, 2006년 크라이슬러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보태 PGA투어에서 강자로 자리를 잡았다. 2007년에는 잭 니클라우스가 주최한 특급 대회 메모리얼 토너먼트에서 우승한데 이어 AT&T 내셔널에서 우승하면서 상금랭킹 4위를 차지했다. 2008년에는 소니오픈을 제패하면서 세계랭킹 7위까지 올랐다.

최경주는 2011년 제5의 메이저대회로 불리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정상에 오르며 골프 인생에서 화려한 정점을 찍었다. 2000년부터 18년 동안 PGA투어에서 활동한 최경주는 2020년엔 미국 시니어투어인 챔피언스투어로 무대를 옮겨 한국 프로 골퍼의 해외 진출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연다.

최경주에 이어 해외 무대에서 굵직한 자취를 남긴 선수로는 양용은을 꼽는다. 1996년 프로로 데뷔한 양용은은 6년 만인 2002년 SBS골프최강전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다. 첫 우승과 함께 자신감을 얻은 양용은은 2003년 일본 투어에 도전했고, 일본을 교두보로 세계를 향해 나아갔다.

일본 투어 데뷔 전까지 국내에서 1승에 그쳤던 양용은은 2004년 일본 진출 첫해에 2승을 거뒀다. 2006년까지 매년 1승씩을 추가하면서 일본에서 3년 동안 4승을 올린다. 양용은은 2006년 한국오픈에서 노승열에 10타 차로 출발했다가 역전 우승을 차지하는 기적 같은 역전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우승으로 받은 출전권으로 나선 유러피언투어 HSBC 챔피언스에서 또 한번 대형 사건을 일으켰다. 세계랭킹 1위 타이거 우즈와 2위 짐 퓨릭, 6위 레티프 구센이 출전한 이 대회에서 양용은은 우즈를 2타차로 따돌리고 우승했다.

HSBC챔피언스 우승으로 세계랭킹 30위까지 오른 양용은은 이듬 해 유러피언투어와 함께 세계랭킹 상위자 자격으로 PGA투어에도 출전을 이어나갔다. 한동안 이렇다할 성적이 없이 시간을 보냈던 그는 2008년 PGA 퀄리파잉 스쿨에 도전해 투어 카드를 얻었다. 그리고는 첫해 인 2009년 3월 혼다클래식에서 PGA투어 첫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양용은은 그 해 9월 메이저 대회인 PGA챔피언십에서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와 최종일 맞대결한 끝에 역전 드라마를 펼치며 우승했다. 한국인 뿐 아니라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으로 메이저대회 정상에 선 위업이었다. 우즈가 최종일 선두로 나서 역전패를 한 건 양용은에게 당한 굴욕이 유일했다. 양용은은 비록 PGA투어 활동을 오래 이어가지는 못했지만 PGA투어 역사에 기록될 명승부를 연출한 선수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최경주 키즈의 등장



바이런넬슨 챔피언십 우승으로 한국인 세 번째 PGA 우승자가 된 배상문.

최경주 양용은의 활약은 더 많은 한국 프로 골퍼를 미국 무대로 이끌었다. 한국에서 두 차례 상금왕을 했던 배상문도 일본을 거쳐 PGA투어로 건너간 사례다.
2011년 일본에서 3승을 거두며 상금왕을 꿰찬 배상문은 PGA투어에 도전했다. 퀄리파잉 토너먼트를 통과한 그는 2013년 바이런 넬슨 챔피언십에서 우승, 최경주 양용은에 이어 PGA투어 대회에서 우승한 세 번째 한국 선수가 됐다. 그 이듬해 프라이스닷컴오픈에서 두 번째 우승에 성공한 배상문은 군 복무를 마치고 PGA투어에 복귀해 롱런을 노리고 있다.

허석호. 장익제. 김형성. 김경태. 이동환 등은 일본 무대에서 성공을 거뒀으나, 그것이 PGA투어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허석호는 일본에서 8승이나 올렸고 김경태는 13승을 따내며 일본투어 상금왕을 두 번이나 차지했지만 PGA투어 진출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

일본투어에서 4승을 올린 김형성이나 세 차례 우승한 장익제는 끝내 더 큰 무대와 인연을 맺지 못했고, 신인왕을 차지한 이동환은 PGA투어와 웹닷컴(2부)투어를 오락가락하며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2000년대 후반부터는 또 다른 해외 진출 양상이 나타났다. 노승렬과 김시우, 안병훈은 한국과 일본을 거치지 않고 PGA투어에 들어갔다.

노승렬은 아시안투어를 먼저 두드렸다. 2008년 아시안투어 미디어차이나 클래식에서 우승한 노승렬은 2010년 아시안투어를 겸한 유러피언투어 메이뱅크 말레이시아오픈에서 우승해 최고 무대인 PGA투어 진출에 청신호를 밝혔다.

2011년 PGA투어 퀄리파잉 토너먼트에서 합격한 노승렬은 웹닷컴투어를 거쳐 2014년 PGA투어에 입성했고 취리히클래식에서 정상에 올라 한국인으로 네 번째 PGA투어 챔피언이 됐다.

김시우는 아예 프로 골퍼로서 첫 발을 미국에서 디뎠다. 18세가 되기도 전에 최연소의 나이로 2012년 PGA투어 퀄리파잉 토너먼트에 합격한 김시우는 웹닷컴투어로 밀렸지만 2016년 PGA투어로 다시 올라갔다. 김시우는 2016년 윈덤 챔피언십에서 생애 첫 우승을 차지한 뒤 2017년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대회 최연소 우승이라는 역사를 만들었다.

미국에서 성장한 안병훈은 유러피언투어에서 먼저 성공했다. 2015년 BMW PGA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안병훈은 세계랭킹을 50위 이내로 끌어올려 PGA투어에 무혈입성했다.

강성훈과 김민휘, 이경훈은 일본보다는 곧바로 PGA투어를 노크했다. 왕정훈과 이수민 등은 유러피언투어에 먼저 진출했다. 임성재는 어린 나이에도 한국 일본을 거쳐 미국 진출에 성공하는 등 해외 진출 경로가 다양해졌다.

해외 진출 러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은 한국 프로 골프에 위기가 닥치면서 투어 선수들의 일본 무대 진출이 대세가 됐다는 사실이다. 연간 20개 안팎 대회를 치르며 호황기를 구가하던 한국프로골프는 2015년 대회수가 12개로 줄어드는 불황을 맞았다. 대회가 없어진 선수들은 앞다퉈 일본프로골프투어 퀄리파잉 토너먼트에 응시해 한 때 40여명의 선수가 한국과 일본 두 투어를 뛰었다.
2017년 상금왕 김승혁과 2018년 상금왕 박상현이 모두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한 사실은, 한국 프로 골퍼들의 일본 진출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음을 시사한다.

이지연 기자 easygolf@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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