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우가 '명인열전' 2021 마스터스 대회 도중 명장면을 연출했다. 톱10으로 출발한 김시우는 톱10 밖에서 대회를 마쳤지만, 공동 12위로 자신의 마스터스 역대 최고 성적을 기록했다. 12위 내에 자리하며 내년 마스터스 출전권도 획득해 설욕의 기회도 얻었다.

지난해 마스터스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이례적으로 11월로 대회 기간을 미뤘다. 사상 최초의 '가을 마스터스'였다. 대회장은 예년과 같은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골프클럽(파72)이었지만 마스터스의 전매특허인 '유리알 그린'이 사라졌다는 평이 주를 이뤘다. 가을 마스터스가 막을 내린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제자리를 찾은 마스터스. 전매특허인 유리알 그린도 제자리로 돌아왔다. 딱딱하고 빠른 그린에 선수들은 속수 무책으로 타수를 잃으며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예외인 듯 보이는 선수도 있었다. 올해 1월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에서 통산 3승째를 기록하며 오랜만에 우승의 기쁨을 맛본 김시우다. 올 시즌 우승 1회를 포함해 톱10에 3차례 이름을 올릴 만큼 활약한 김시우. 처음에는 유리알 그린도 상승세를 막지 못하는 듯 보였다. 김시우는 1라운드에서 공동 8위로 순항했고, 2라운드에서는 출발 후 13개 홀에서 버디만 4개를 솎아내며 질주했다. 하지만 14번 째 홀인 14번 홀(파4)에서 발목이 잡혔다. 약 1.5m 거리의 파 퍼팅을 놓친 것이다. 쓰리퍼트를 하며 첫 보기가 기록됐다. 이어 15번 홀(파5)에서는 만회 기회가 사라졌다. 칩샷이 홀을 지나친 것이다. 칩샷 미스의 아쉬움과 실망감을 결국 죄 없는 퍼터에 풀었다. 동반자의 플레이를 기다리며 캐디에서 퍼터를 건네받은 그는 퍼터를 바닥에 찍고 샤프트를 구부려 망가뜨렸다. 고의로 클럽을 훼손시킨만큼 그에게 퍼터를 교환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가뜩이나 까다로운 유리알 그린에서 그는 퍼터까지 잃게 됐다. 그의 선택은 3번 우드였다. 3번 우드를 들고 처음 퍼트를 했던 16번 홀(파3)에서는 약 1.5m 거리의 버디 퍼트를 성공시킬뻔 하기도 했다. 16번 홀을 비롯해 다행히 남은 3개 홀을 모두 파로 마쳤다. 어떻게 보면 희극이고, 어떻게 보면 비극이다. 남은 3개 홀이 모두 버디 찬스를 만들어낸 홀이기 때문이다. 만약 제대로된 퍼터가 있었더라면 타수를 줄여 좀 더 높은 순위에서 2라운드를 마쳤을 지도 모른다.

3개 홀을 퍼터 없이 경기한 김시우는 3라운드 무빙데이에는 무려 2개의 퍼트를 준비했다. 물론 여분의 퍼터를 많이 준비해 나간다고 하더라도, 2라운드와 같이 홧김에 고의로 퍼터를 손상했을 때는 클럽 교체가 불가능하다. 성적도 전날보다 아쉬웠다. 1번 홀(파4)과 2번 홀(파5)에서 연속 보기를 범하며 불안정한 출발을 했고, 결국 버디 3개와 보기 5개를 묶어 2오버파를 기록했다. 순위도 전날보다 4계단 하락한 공동 10위로 밀려났다.

공동 10위로 최종라운드에 나선 김시우는 최종일 버디 2개와 보기 2개를 솎아내며 이븐파를 쳤다. 타수를 잃지는 않았지만, 순위는 2계단 하락한 공동 12위로 대회를 마쳤다. 하지만 아쉬움만 남긴 것은 아니다. 3번 우드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단단한 플레이를 선보였다. 그의 열정적인 모습에 '스푼 김'이라는 별명도 생겨났다. 2라운드에서 퍼터 없이도 타수를 잘 지켜낸 덕에 결국 자신의 마스터스 역대 최고 성적을 기록했다. 지난 2017년부터 5회 연속 마스터스에 출전하고 있는 김시우는 첫해 컷탈락 이후 꾸준히 성적을 내고 있다. 2018년 공동 24위, 2019년 공동 21위, 지난해 공동 30위를 기록했다. 올해는 공동 12위로 자신의 마스터스 최고 성적을 기록했고, 지난해 12위 이내 입상자에게 출전권을 부여한다는 마스터스 출전 자격 기준에 따라 내년 마스터스 출전권 확보에도 성공했다.

한편, 이번 대회 우승자는 마쓰야마 히데키(일본)이다. 4타 차 단독 선두로 최종라운드에 나선 히데키는 1오버파를 기록했다. 최종합계 10언더파로 2위 윌 잘라토리스(미국)을 1타 차로 따돌리고 우승했다. 일본 선수가 남자 골프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한 것은 120년 만에 처음이다.

김현지 기자 kim.hyeonji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