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중고차를 사기 위해 가장 먼저 어떻게 하는가.

우선 중고 자동차 매매 사이트 중 낯익은 이름의 사이트를 하나 골라 들어가 당신이 생각하는 조건과 비교적 잘 맞는 중고 차량을 구매할 것이다. 이때 사고나 침수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별도의 검증 정보까지 꼼꼼히 챙겨 보는 건 필수 코스가 된 지 오래다.

초창기 중고차 매매 사이트에서는 허위 매물을 그럴듯하게 꾸며 사진을 올려놓고 막상 고객이 방문하면 다른 차량을 강매하던 때도 있었고 사고 차량이란 것을 숨기고 더 비싸게 팔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대기업이 이 시장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면서 중고차 시장의 생리는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최근 거래된 동급 매물의 시세는 물론 성능 점검은 기본이고 보험 이력과 판매자 정보 또 대출 상품까지 원스톱으로 한눈에 볼 수 있게 했다. 허위 매물을 신고할 수 있는 공간까지 마련해 사이트의 신뢰도를 높였다.



그럼 중고 골프채를 구매하기 위해서 당신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골마켓의 중고 장터를 이용하거나 당근마켓으로 직거래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그 외에는 지인에게 클럽을 물려받거나 안면이 있는 로드숍에서 중고 클럽을 추천받아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골프산업백서 2022>에 의하면 국내 골프 용품 시장 규모는 9조9365억 원 정도다. 그중 중고 골프 클럽 거래 규모는 약 5000억 원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어마어마한 규모로 중고 클럽이 거래되고 있지만 자기가 구매한 클럽이 진품인지 가품인지조차 제대로 검증해보지 못한 채 필드로 들고 나가는 실정이다.

이런 현실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골프 업계 IT 전문가들이 뭉쳐 벤처 회사를 차렸다. 주식회사 트루골프의 박태근 대표를 비롯해 이충진 CTO(총괄 연구 소장), 남한수 개발 이사, 이호형 고문 등은 모두 보이스캐디(골프 거리 측정기 개발 업체) 출신이다.


골프계 엔카(구 SK엔카)를 표방하며 뭉친 이들은 기업 부설 연구소까지 만들어 14단계에 걸쳐 클럽 내외부를 객관적으로 검사하고 진단하는 트루레벨링 시스템(현재 특허 출원 중)을 개발했다.

박 대표는 “골프 분야에 IT 회사가 많지 않다”면서 “코-파운더들이 모두 보이스캐디 출신이다 보니 과학적인 방법으로 문제점을 증명해내는 것에 익숙하다. 우선 클럽 거래에 있어 해당 클럽이 건강한지 아닌지 증명해내기 위한 시스템 개발이 필요했고 별도의 연구소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는 “거래도 진실, 제품도 진실, 콘텐트도 진실이었으면 좋겠다”며 “최근 C-커머스(중국 이-커머스 플랫폼)로 인해 가품 문제가 엄청나게 대두되고 있다. 정확하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깨끗한 클럽 거래 환경을 만들고 싶다는 의미에서 회사명도 ‘트루골프(TRUE GOLF)’라고 지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기업 부설 연구소에서 진가품 판정에 관한 로직을 짜고 설계한 것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현해낼 것인지 계획까지 수립한다. 그러면 트루골프가 그 배턴을 이어받는다. 자금을 사용해 장비를 구매하고 시스템을 만들어 데이터를 수집하는 과정을 거친다.

박 대표는 “중고차는 가품의 개념이 없지만 골프 클럽은 가품이 많다. 가품도 문제지만 건강하지 않은 제품을 여러 경로를 통해 사고파는 행태가 더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이어 박 대표는 “클럽은 명품과 달리 기능적 속성(정확히 치고자 하는 것, 멀리 보내고자 하는 것)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소비자가 더 깨어 있어야 한다. 왜 엉망인 제품이 5000억 원 규모로 거래되고 있는지 우리 모두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 부분이다”고 강하게 말했다.


그는 “트루레벨링 시스템은 발명한 것이 아니라 발견한 것이다”면서 “이 비즈니스 모델은 5년 전부터 기획한 것이다.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제품의 상태를 A부터 Z까지 정밀하게 진단할 수 있는 과학적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정밀 진단 프로세스에서는 비파괴 장비(엑스레이 검사 장치)를 통해 몰드의 형상, 샤프트나 헤드의 미세한 금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고 설명했다.

트루골프는 각종 골프 클럽의 스펙을 분석하고 측정하는 장비까지 구축해 진가품 여부를 판단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샤프트의 탄성(CMP), 스윙웨이트, 앵글, 무게, 길이 등을 측정하는 장비를 보유하고 이를 활용해 진단을 의뢰한 클럽의 스펙 정보를 제공한다.


트루골프는 상품 정보부터 진가품 판정 결과와 스펙 데이터를 공개해 이용자에게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애플리케이션의 베타 버전을 출시해 운영 중이다.

중고 클럽의 시세를 한눈에 볼 수 있고 자기가 구매한 클럽이 진품인지 가품인지 검증이 필요하면 검사 의뢰를 할 수도 있다.

박 대표는 골프채 가품의 특징을 크게 3가지로 설명했다. 그는 “헤드 무게가 다르고 특히 샤프트 무게에서 큰 차이가 발생한다. 진품과 가품의 무게가 무려 60g 차이 나는 경우도 있었다. 60g이면 쇠 파이프를 들고 휘두르는 것과 다름없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이어 그는 “비파괴 장비(엑스레이)를 통해 살펴보면 몰드의 형상이 다르다. 가품은 겉으로 보면 똑같으나 내부는 너무 단출하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박 대표는 “샤프트를 잘라서 재판매하는 경우도 있다. 길이가 줄어든 만큼 연장 툴을 이용해 별도의 재질을 대서 그립으로 감싼다. 그러면 킥 포인트가 변하게 된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박태근 대표는 “현재 집에 잠들어 있는 골프 클럽의 수만도 어마어마할 것이다. 클럽을 2세트 이상 보유한 골퍼를 대상으로 우리가 설문 조사를 해본 결과 ‘팔기 귀찮아서’라고 답한 응답자가 60.1%였다. 그리고 11.2%가 ‘팔 곳을 몰라서’라고 답했다. 그만큼 골프계에 중고 클럽을 편하게 믿고 거래할 수 있는 곳이 없다는 방증이다”고 강조했다.



현재 트루골프가 개발 중인 중고 클럽 거래 플랫폼은 자기 클럽을 휴대폰으로 찍어 올리면 최근 거래가 이뤄진 동일한 클럽의 시세를 간단히 확인할 수 있다. 또 진가품 진단을 위해 저렴하고 편한 택배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다.

베타 버전의 애플리케이션에 있는 비전테크 기능(AI 시스템)이 지금 이 시간에도 스스로 학습하고 있다. 클럽 이미지에서 추출한 데이터와 서버에 등록되어 있는 데이터를 비교하고 분석해 해당 클럽의 진가품 판정까지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체계화하고 있다.

트루골프는 모든 골퍼가 건강한 골프채를 안전하게 거래할 수 있도록 온오프라인 통합 채널 시스템을 완성해 2026년까지 해외 지사를 설립하고 글로벌 유통망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박 대표는 “대기업의 1차 시드 유치에 성공했고 현재 2차 시드 투자까지 진행하고 있다. 현재 번개장터와 협업을 추진 중이며 서비스 고도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우리가 개발 중인 이 시스템이 전 세계 골퍼가 이용하는 골프 클럽 거래소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고형승 기자 koh.hyungseung@jtbc.co.kr